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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語法적 아버지 '자랑'사람 2019. 10. 14. 11:34
어제 후배들과 오른 북한산에서 산행내내 자식의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기이한 반어법으로 표현하는 말을 들었다. 한 귀에도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절절한 심정이라는 걸 알 수 있는데, 한 후배는 그것을 역으로 돌려 얘기하는 것이다.
예컨대 이런 얘기도 한다. 아버지는 올해 90을 넘긴 연세인데, 예전에 고등학교 교사를 했다. 50년도 훨씬 전, 어머니는 아버지의 박봉을 쪼개 동네의 같은 교사 부인들과 '다루모시'를 해, 그 때는 허허벌판이던 마산 합성동의 땅을 아버지 몰래 좀 장만했다. 어느 날 재산세 고지서가 날라온 것을 아버지가 보았다. 당장 난리가 났다. 어떻게 청렴해야 할 교사 부인이 그런 투기를 할 수 있느냐며 당장 팔아라고 했다. 몇 날을 그 문제로 부부싸움 하는 것을 당시 국민학교 학생이든 후배는 보고 들었다. 어머니는 그 땅을 결국 처분했다. 다른 교사 부인들은 그 땅을 그대로 지켰다. 세월이 흐르고 그 땅은 수백배가 올랐다. 다른 교사 부인들은 그 땅으로 부자가 됐다. 아이들 아파트도 사주는 등 떵떵거리고 살았지만, 후배 집은 가난하게 살았다. 후배는 그런 고집불통의 아버지가 있을 수 있느냐며 아버지를 비난하는 듯 했다. 이 이야기 외에 다른 것도 있다며 산을 오르는 내내 아버지에 대한 그런 류의 얘기를 한다.
나도 그 아버지를 좀 안다. 좀 고지식한 면이 있지만, 그래도 교사생활을 훌륭하게 마치고 지금은 원로문학인으로 마산에서 존경을 받고 있다. 내가 후배 말 속에 담긴, 후배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의 핵심을 은근히 짚었다. 아버지를 비난하는 말 속에 아버지의 청렴결백함을 자랑하고 내세우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 나는 그렇게 들린다. 후배는 펄펄 뛴다. 그게 아니고 그런 아버지 때문에 기를 펴지 못하고 가난하게 살아 온 것에 대한 억하지심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내 말에 다른 한 후배도 동조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배는 산에서 내려오는 내내 아버지에 대한 불만의 심경을 나타냈다.
구기동 뒷풀이 자리에서도 후배는 계속 그랬다. 그러다 어느 지점에서 말이 좀 바뀐다. 아버지의 그런 고집불통적인 점을 유교적인 철학관으로 풀이를 하는데, 듣기에 말이 좀 어렵다. 술이 좀 들어가서 그런 것일까, 후배의 기세등등함은 점점 약해지면서 아버지에 대한 태도가 바뀌어져 가고 있었다. 내가 "아버지 자랑하느라 욕 봤다" 했더니 씩 웃는다. 나더러 부탁을 한다. 자식으로서 아버지에 전하고자 하는 이런 저런 의도가 있는데 그것을 좀 전해달라고 했다. 나는 한 다리 건너, 마산에서 아버지를 제자로서 보살피고 있는 지인을 전화로 불러 내 한 참을 얘기했다. 후배는 그 광경을 지켜보더니, 통화를 끝내자마자 먼저 일어서겠다며 자리를 떴다.
알딸해진 기분으로 집으로 오는데 달이 휘엉청 떴다. 문득 내 아버지가 그리웠고 생각이 많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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