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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어령 선생과 '文學思想'
    사람 2019. 12. 18. 17:19

    이어령(85) 선생은 이 상 시인을 우리나라 문단의 3대 천재로 꼽고 있습니다. 와병 중에도 강연의 주제를 이 상으로 잡은 것도 그 때문이겠지요.

    그러고보니 생각납니다만, 이 선생이 1972년도 주간을 맡아 월간 문예잡지로 발간한 '문학사상' 창간호의 표지 또한 이 상의 친구인 구 본웅이 그린 이 상 시인의 초상화입니다. 이 창간호가 나온 게 1972년 그 해 10월이었습니다. 잡지는 나오자마자 관심을 끌었습니다. 당시 거의 독보적이었던 '현대문학'에 버금가는 인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창간호는 지금 펼쳐보아도 내용이 여러 면에서 알차고 다향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박경리 선생의 창작활동과 관련한 사진도 실려있고, 윤이상의 '심청'에 관한 글도 있습니다.

    창간호는 꽤 많이 팔렸습니다. 내용도 그렇지만, 이어령 선생이 만든 문학잡지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을 겁니다. 물론 저도 그 때 구입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문학사상 창간호에 대해서는 그 후 이어령 선생과 함께 좀 씁쓸한 생각을 가졌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창간호는 출간되자마자 소장가치가 부여되면서 많이 팔려 나갔고, 그 얼마 후부터 품귀현상까지 빚어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만큼 문학사상은 잘 됐습니다.

    그리고 그 몇 해 후인가, 문학사상을 만드는 문학사상사의 경영을 이 선생의 친형 되시는 분이 맡습니다. 그런데 그 무렵인가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문학사상 창간호가 새로 출간돼 서점에서 팔리기 시작한 것이지요. 원본 창간호를 가진 입장에서는 좀 어이없는 행태였습니다.

    당시 출판사의 그런 행위를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로 좀 논란이 있었습니다만, 어쨌든 상술이었다는 비난 쪽에 무게가 실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어령 선생은 뛰어난 문재로 서울문리대 다닐 적부터 자천타천의 '문단게릴라'라는 평가 속에 문학적인 측면에서 많은 논쟁거리를 유발하신 것도 그렇고, 그 후로도 우리나라 문화발전에 많은 이바지를 한 분인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하지만 선생은 또한 그에 못지않게 이런 저런 구설수에도 오른 적이 있기도 합니다. 저는 문학사상 창간호와 관련한 상술여부 논란도 그런 구설수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선생이 건강한 모습으로 이 상 시인을 주제로 강연한 모습의 뉴스를 접하고 엉뚱하게 문학사상 창간호와 관련한 그런 기억을 떠 올렸습니다만, 결코 선생을 폄훼하고자 하는 의도는 아닙니다.

    문단과 문화계의 큰 어른으로서 선생이 앞으로도 들려 줄 말들은 앞으로도 많을 것이고, 많은 사람들은 그걸 기대하고 있습니다.











    암투병 이어령 “시인 이상처럼… 의미를 남기면 불멸”

    조종엽 기자입력 2019-12-18 03:00수정 2019-12-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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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과의 만남’ 강연자로 나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왼쪽)이 서울 종로구 ‘이상의 집’에서 17일 열린 ‘이상과의 만남’에 강연자로 나섰다. 그는 “이상을 기억하는 오늘 자리는 작지만 크고, 순간이지만 영원하다”면서 “이상은 시간을 이기고, 파란을 견디면서 살아남는 방법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이상의 집’. 소리꾼 장사익 씨가 ‘귀천’을 노래하자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85)이 손으로 입을 감싸 쥐고, 감상에 빠져들었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로 노래를 마칠 때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무슨 뜻이었을까.

    알려진 것과 같이 이 전 장관은 암 투병 중이다. 외부 행사도, 모임 초대도 거의 사절하고 있는 그가 문화유산국민신탁(이사장 김종규)이 이날 마련한 ‘이상과의 만남’ 행사에 강연자로 모습을 드러냈다. 잠시 짬을 내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몸이 불편해도 오늘 나온 건, 내가 살아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상처럼 일찍 세상을 떠나도, 불행했어도 오래도록 사는 방법이 있다”면서 “내가 이상에 대한 은밀한 이야기를 전하면 청중의 머릿속에 또 하나의 이상이 탄생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병중에도 그는 ‘한국론’을 구술로 집필하고 있다. 12권이 목표지만 완성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래도 쓴다. “내가 비록 세상을 떠나도 생각이 끝없이 문화유전자처럼 퍼져간다면 이런 게 하나의 희망이 될 수 있는 게 아니겠나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글 쓰는 사람은 절망이 끝이 아니에요. 절망을 글로 쓸 수 있잖아요. 그게 암흑이라고 해도 암흑을 쓸 수 있어요. 그래서 행복한 죽음을 맞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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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생명은 숨쉬는 것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정보가 생명”이라고 말했다. 개인의 목숨은 다해도, 정보는 살아남는다.

    “생명은 바로 의미의 세계예요. 신라의 뜻이 지금도 살아있다면 절대로 멸하지 않은 것이에요. 영원한 것이 없는, 누구나 죽는 삶 속에서 뭐를 남길 것이냐? 의미를 남기는 것이죠. 이상이 바로 그래요. 큰 기념관은 없지만 이상 같은 사람이 오늘날의 한국을 있게 만든 것이지요.”

    사실 이 전 장관은 투병이 아니라 ‘친병(親病)’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나이가 많아지면 누구나 겪는 일이니 병과 함께 살자고 태도를 바꿨더니, 병과도 친해서 가까워졌다”고 한다. 항암치료는 받지 않고 있다.

    “객기로 이러는 게 아니에요. 내 나이는 자연히 수명을 다해 세상을 뜨나, 병으로 세상을 뜨나 마찬가지예요. 더구나 나이 많은 사람은 (암 진행이) 더디니까. 참고 견디면서 글 하나 더 읽고, 창문 한 번 더 열고 풍경을 보는 것, 그게 의미가 있어요. 물론 내 얘기고, 젊은 사람들은 의사 지시 따라서 항암 치료 꼭 받으세요.(웃음)”

    피곤한 듯하던 이 전 장관은 강연을 시작하자 환자로 보이지 않았다. 힘을 더 얻어가는 듯했다. 그는 “이상은 처음으로 공간적이고 시각적인 시를 쓴 한국인”이라고 했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근배 대한민국예술원 차기회장, 박정자 배우, 문화재청의 정재숙 현 청장과 이건무 전 청장, 김원 건축가 등 30여 명이 귀를 기울였다.

    “사람들은 내게 올림픽이나 월드컵 때 일한 것을 두고 나라에 공헌했다고들 하는데, 이런 건 내 삶에서 별로 중요한 것들이 아니에요. 장관도 내 일생에서 2년밖에 안했어요. 지금은 올림픽 굴렁쇠나 알지, 내가 ‘공간기호론’을 썼다는 건 몰라줘요. 쉽게 알 수 있는 것을 공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외로운 것, 알아주지 않는 것이 중요한데 말이지요.”

    그는 젊은 시절 ‘우상의 파괴’를 써서 기성 문단을 뒤흔든 사람이 아니라, ‘이상론’으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작가 이상을 되살려낸 인물로 기억되기를 바랐다. 그는 이상의 작품과 유품, 초상을 찾아내고, 이상문학상을 제정했다. 그가 창간한 ‘문학사상’ 첫 호 표지가 이상의 초상이다.

    “이상은 젊은 나이에 객사한 폐결핵 환자지요. 불행하게 살았어요. 그러나 작품만으로 권력과 돈을 남긴 사람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줬습니다. 1930년대 돌아가신 분이 지금도 새로움을 갖고 있다는 게 진짜 공헌이지요. 밖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이름 내는 사람들,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별로 공헌한 게 없지요. 뒷골목에서 숨어서 일한 분들이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고 앞으로도 끌고 갈 겁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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