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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智異山
    村 學 究 2020. 3. 3. 08:16

    몸이 나아지면 지리산으로 갈 것이다. 원지에 내려 단성 땅 운리로 간다. 해질 녘이면 좋겠다. 단속사 절 터 오누이 3층 석탑을 볼 것이다. 나의 지리산에 대한 초례(初禮}는 그 석탑이다. 지리산을 품에 안아 보낸 천년이다. 지리산 천년의 내음은 그리움이다. 품어도 품어도 갈증처럼 더해가는 그리움이다. 내가 그린 지리산도 그 안에 있다. 웅석봉으로 오를 것이다. 봄을 기다리는 히어리꽃 나뭇 잎이 한층 짙어져 있을까. 히어리는 추억이다. 지리산 이른 봄의 추억이다. 산 꼭대기 그 아저씨는 아직도 있을까. 산 지키고 불 지키는 그 아저씨는 곰을 닮았다. 그 말에 곰처럼 웃었다. 검수레한 얼골에 허연 이빨까지. 내려오는 길, 옥수 흐르는 계곡에 철퍼덕 엎드린다. 물을 먹는다. 곰 처럼. 추성동엘 갈 것이다. 마음으로만 오를 칠선계곡. 여적지도 가끔씩 자다가 그 때 꿈을 꾼다 . 칠선계곡을 내려오다 길을 잃었다. 뜨거운 여름날. 깊은 소에 빠졌다가 그대로 튕기듯이 솟구칠 제. 머리 위에 물뱀 한 마리가 붙었다. 쉬-이 쉬-이 했다. 날은 어둑해져 가는데 추성동은 얼마나 남았을까. 옥녀탕 부근 암굴에 소리하는 구신이 있었다. 나더러 고추장을 달라기에 돌팔매 시늉으로 쫓았다. 추성동엔 가을이 깊어져 있을 것이다. 낙엽 바위산길을 따라 초입까지만 간다. 막아버린 곳까지. 계곡 물은 가을을 담은 옥빛일 것이다. 옥녀탕 선녀탕을 지난다. 암굴은 예전 그대로 있을까. 수직으로 내리꽂는 칠선폭포는 장엄한 지리산 그 자체다. 마폭포 앞에서 오싹해지는 전율은 역설의 그리움이기도 하고. 천왕봉이 머지 않았다. 중산리로 내려갈 것이다. 볼게 있다. 초입에 서 있는 천상병 시비. 이게 왜 여기 있을까. 지리산이 시인에겐 하늘이었던 모양이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했던 시인이 누워서 천왕봉을 바라보고 있다. 옛 같지 않은 몸과 마음이다. 예전이면 함양으로 갔을 것이다. 상림을 걷고 연리지 나무도 보고. 병곡식당 피순대국에 소주 한잔으로 산행을 마무리했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 뿐이다. 몸 탓이지만 게을러졌다. 다시 산청군 단성면 운리로 가자. 단속사 곁 한적한 터에 재형이 내외가 산다. 바지런히 오순도순 잘 산다. 이즈음 겨울 곶감 손질에 한창 바쁠 것이다. 재형이 집에 가면 반드시 먹어야 할게 있다. 경화 씨가 만든 아침 샌드위치. 지리산 삐알의 각종 푸성귀로 풍성한 샌드위치다. 어느 해, 전날 억수로 마신 술 아침 해장이었다. 뜻밖의 완벽한 해장이었다. 염치없지만 경화 씨에게 다시 부탁해 보자. 지리산 마무리는 이것으로 하자. 아니다. 빠뜨린 게 있다. 단속사 삼층석탑을 다시 봐야 한다. 역시 황혼무렵이면 좋겠다. 내 지리산의 처음과 끝이다. 몸이 나아지면 나는 꼭 지리산으로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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