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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해보는 묵주기도다. 2006년 견진 받을 때, 그리고 2011년 어떤 난감한 일에 부닥쳐 해보고는 지금껏 그냥 잊고 살았다. 그러니까 나에게 묵주기도는 신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아주 잘못된 것이었다. 말하자면 필요할 때만 찾는, 이기로 점철된 행위라는 게 스스로 느껴지는 부담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묵주기도는 그러한 나름의 심한 자책감이 담겨진 좀 두려운 대상이기도 했다. 그러니 묵주를 다시 들고 기도를 해보려는 게 쉽지는 않다. 그래도 다시 묵주를 들어본다. 아니 다시 들게하는 어떤 힘을 느낀다.
오래 전부터 갖고있던 묵주가 있었다. 오래 전에 고인이 되신 처 할머니가 1979년 12월 나의 영세를 축하한다며 주신 것이다. 뜨개질 주머니에 담겨진, 고색창연하고 묵직한 묵주였다. 묵주기도를 잊고 있었기에 그 묵주 또한 어디에 뒀는지 모른다. 어제 하루 종일 그 묵주가 있을 법한 집안 곳곳을 뒤졌으나 묵주는 나오질 않았다. 아내도 그 묵주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같이 찾았지만 허사였다. 그 묵주와 항상 함께 하던 오래 된 기도문 책도 행방이 묘연하다. 결국 아내가 어딘가를 뒤지더니 나무로 만들어진 묵주를 나에게 건넸다.
오늘 아침 뭔가 마음이 바빠졌다. 묵주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생각만 앞선다고 될리가 없다. 하는 방법과 몇몇 기도문을 잊은 탓이다. 인터넷 신세를 졌다. 하는 순서와 기도문을 일일이 종이에 적었다. 기도를 하는 사이에 늦잠에서 깬 큰 애가 화장실 등을 왔다갔다 하면서 좀 소란스러웠다. 아이가 PC 앞에 움직이지 않고있는 나를 봤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꿈쩍도 않고 왜 저러고 혼자 앉아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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