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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祖 이 성계의 애틋한 친필컬 렉 션 2010. 11. 26. 17:00
그저께 선배님 사무실에서 귀중한 글을 하나 보았다.
태조 이 성계의 친필이다.
무슨 글인가 싶어 한번 훑어 봤는데,
그 내용을 잘 모르겠다.
한문도 잘 모르고 또 그 방면에 워낙 과문한 탓이라,
어떤 글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었다.
선배님의 설명을 들으며 대충 내용을 알 수가 있었는데,
들어보니 예사로운 게 아니다.
이 글의 원본은 전주 李씨 문중의 어떤 분이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원본의 형태는 물론 이 것과 다르다.
두루마리 형태의 원본을 다시 표구한 것이라고 한다.
선배님으로부터 들어보니 글의 내용이 재미있다.
이 성계, 그가 60을 훨씬 넘긴 나이에 딸을 하나 얻는다.
물론 정실에게서 얻은 게 아니라 후궁과의 소생이다.
그 때쯤 이성계는 왕자의 난 등 골육상잔의 험한 꼴을 겪은 후
그의 다섯 째 아들 방원(芳遠)이 세조로 등극한 후,
인생의 허무를 느끼고 고향인 함경도로 들어가있던 때이다.
함흥차사 얘기의 시절과도 부합되는 시기이다.
아마도 이 무렵 이 성계는 어느 여인과의 정분을 통해
고휘를 넘긴 나이에 딸을 하나 얻었던 것이다.
그 나이에 얻은 딸이니, 그 딸에 대한 정성과 사랑이 오죽했을까.
더구나 골육상잔의 권력투쟁을 지켜본 후에 얻은 소생이니 그 의미가 남달랐을 것이다.
어린 이 딸이 앞으로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 하면 내가 이 어린 딸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인가.
이런 노심초사의 마음으로 쓴 게 바로 이 글이다.
이 글에서 이 성계는 딸이 태어난 연유와,
그 딸이 자신의 소생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혹여 후에 딸에게 무슨 일이 닥칠 때, 자신의 소생임을 밝혀줌으로써
이를 모면할 수 있게 하려는 하나의 증표로서 삼고자 하는 글인 셈이다.
이 글은 또 딸이 머물 곳을 비롯해 딸을 위한 집을 어떻게 지으라는 지시까지 담고 있다고 한다.
늙은 아비로서 딸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묻어나는 글이다.
이 성계의 이 글은 20여년 전에 공개되었다고 한다.
당시 전주 李씨 문중에서 이 글을 구입코자 1억 5천만원을 제시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갖고있던 주인이 한사코 팔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결국 문중에서의 종용과 타협 끝에 1백부 한정의 표구본으로 제작했다고 하는데,
이날 본 것도 그 중의 하나인 것이다.
글은 세어보니 모두 225자이다. 열다섯자씩 15행이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이 성계의 수결(手決이다.
태상왕(太上王)이라는 직위 아래 직접 수결을 하고 낙관을 찍었다.
글씨에 대한 느낌은 내용이 그래서인지 부드럽고 다감해 보인다.
고려말의 大장군으로서 위화도 회군을 결심하고 조선을 건국한,
위대한 무골의 풍모는 잘 느껴지지 않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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