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늙은 카메라'가 어느 날 내게로 왔다
    컬 렉 션 2021. 4. 4. 16:28

    옛날 카메라 수집을 한 20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시절 동안 '늙은 카메라'들에 푹 파묻혀 왔다는 얘기이지요. 지금은 이도 저도 아닌 처지가 되어있지만, 그래도 아직 그것에서 완전히 빠져 나오지는 못하고 어정쩡해 하고 있습니다.

    클래식카메라에 푹 빠져있을 무렵인 2000년인가에 그때까지의 심경을 적어놓은 글이 있었습니다. 꽤 긴 글이었는데, 그걸 써 놓고는 까먹고 있었습니다. 그게 어제 옛 USB에 들어있길래 꺼내 보았습니다.

    지금 읽어보니 낮이 좀 화끈거립니다. 그리 절실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치기도 아니고 어쩌다 저쩌다 클래식카메라에 빠져들게 된, 말하자면 하나의 입문기인 셈인데, 혹시 이 방면에 취미를 가지신 분들께는 참고가 될 것 같아 게재해 봅니다.

    -----------------------------------------------------------------------------------------------------------------

     

     

    사람의 팔자라는 것은 참으로 알 수 없다. 거창한 의미로서의 것이 아니라면, 이즈음의 나의 팔자도 그런 맥이다. 도무지 나와는 무관할 것 같았던 어떤 것이 어느 날 나의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그것은 이른바 클래식카메라로 통칭되는 옛날 사진기들이다. 디지털 시대를 살면서 무슨 구닥다리 아날로그 옛날 카메라인가.

    가끔 씩 집 곳곳에 놓여있는 수많은 ‘늙은 사진기’들을 보고 있으면, 저 것들이 어째서 나와 인연을 맺게 됐는지 신통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와 함께 저 많은 카메라들을 앞으로 어찌할까 하는 걱정도 갖는다.

    내가 곧 잘 쓰는 표현으로, 나는 그 카메라들에게 ‘백수의 산물’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신문기자 생활을 그만 두고 이른바 백수생활이 시작되면서 나와의 관계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전에도 카메라를 전혀 나 몰라라 하지는 않았다. 중학교 시절 한 때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것은 말 그대로 ‘찍기’와 관련된 사진기이다. 이즈음 나와 카메라와의 관계는 그 것이 아니고 하드웨어적인 카메라 그 자체에 몰두해 있는 것이다. 좀 고상하게 말하자면 컬렉션, 즉 수집 쪽이라고 할수 있는 것이다.

    통상 1840년 프랑스의 루이자크 망데 다게르(Louis Jacques Mande Daguerre가 금속판을 수은증기에 쐬어 잠재된 이미지가 드러나게 한 후 그 원판을 염화나트륨 용액에 담가 이미지를 정착시킨 것을 사진술 발명의 역사로 친다. 그 이래로 지금까지 약 1만4천 종의 사진기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정확한 숫자는 아니다.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는 여러 형태의 옛 사진기들이 발견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많은 카메라 가운데 클래식카메라는 것은, 말 그대로 고전적인 의미의 것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지만, 그 건 좀 거창하고, 쉽게 말하면 지금까지 나왔던 수많은 사진기들 가운데 이제는 단종되어 없어졌거나,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옛날 기계식 카메라라고 보면 된다.

     

     

    한편으로 옛날에 나온 라이카(Leica)나 콘탁스(Contax), 니콘(Nikon) 등의 명품 사진기를 고상한 차원에서 클래식카메라로 한정해 부르기도 하는데, 주로 그 방면의 일부 부유한 수집가들이 자기 소장품의 과시를 위해 그렇게 부른다. 하지만 어디 옛날 사진기가 라이카나 콘탁스 뿐인가. 유명한 브랜드도 아닐뿐더러 잘 알려지지 않게 나왔다가 사라진 사진기도 수없이 많다. 그 사진기들을 통칭해 뭐라고 부를 것인가. 우리말로는 ‘옛날 사진기’라고 하면 되고, 영어로는 클래식, 혹은 올드 카메라(Old Camera)라 부르면 될 것이다.

    클래식카메라에 빠지고, 사랑하고, 좋아하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클래식카메라 애호가들의 경우 사진기가 대상이니까 사진 일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라고 보여 지지만, 예상 외로 그렇지 않다. 수집가들의 면면을 보면 물론 사진가들도 있지만, 사진 일과 관계없는 일을 하는 부류가 의외로 많다. 나 또한 그렇다. 나를 포함해 사진전문가들이 아닌 사람들이 옛날 사진기에 빠져 좋아하는 배경은 저마다 각각의 연유를 가질 것이다.

    나는 옛날 사진기들이 지나간 시간들을 되감아 주는 느낌을 갖는다. 그래서 그 사진기들의 렌즈를 바라보고 있으면 푸근해진다. 그 것이 언제이든, 지나간 시절이 좋았다 는, 때 지난 유행가와 같은 복고조의 그런 느낌이 나는 좋다. 다른 클래식카메라 애호가들도 나와 비슷한 처지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점이 아마도 그 배경의 가장 근접된 답이 아닐까 싶다. 그 낡고 오래된 사진기를 보듬고 다듬는 일은, 이를테면 명멸하는 시간을 되감고자하는 것, 그리고 낡아서 꺼져가던 사진기에 생명을 다시 불어넣는 일이다. 그 행위는 어떤 측면에서 옛날 카메라라는 물성으로 결국은 자신을 어루만져 주고 위무해 주는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Vitomatic IIa)

     

    내가 맨 처음 접하게 된 클래식카메라는, 지금 생각해 보면 독일제 포익트랜드 비토메틱 IIa(Voigtrander Vitomatic IIa)였던 것 같다. 백수생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황학동 벼룩시장을 매일 출근하다시피 돌아다닐 적, 거리의 좌판에서 그 카메라를 처음 만났다. 지금도 그렇게 느끼지만, 그 카메라를 처음 볼 때의 느낌은 참으로 예쁘다는 것이었다. 한참을 들여다보며 만지작거려도 도무지 싫증이 나질 않았다.

    주인의 눈총을 느끼고 가격을 물었더니 거금 30만원이었다. 호주머니에 돈만 있으면 샀을 것이다. 그러나 돈이 없었다. 좀 어색해서 깎기를 시도하다 슬그머니 물러섰다. 그 날 밤 잠 자리에서도 그 녀석이 눈에 아롱거렸다.

     

     

                                                                  (Leica IIIF w/Summicron 5cm)

     

    그렇게 해서 알게 된 클래식카메라였지만, 처음 손에 넣은 것은 그 것보다는 훨씬 고가인 라이카(Leica)였다. 클래식카메라에 관해 어설픈 지식쪼가리 만을 지닌 채 황학동시장을 돌아다니다가, 역시 어느 좌판에서 마주친 라이카. 그 카메라는 참으로 앙증맞게 생긴, 셀프타이머가 달린 스크류마운트(LTM) IIIF 모델이었다. 렌즈는 즈미크론(Summicron) f.5Cm 표준렌즈. 가격을 물었더니 80만원. 흥정 끝에 70만원을 주고샀다. 나는 그렇게 해서 클래식카메라의 세계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 라이카를 집에 갖고 와 밤새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물건들 중 이렇게 잘 만든 것이 또 있을까 하고 감동하고 또 감동했다. 그 때부터 이미 나는 클래식카메라의 둥지 속에 깊숙이 빠져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카메라는오래 지닐 수 없었다. 들여다보다, 들여다보다, 결국 그날 밤 그 카메라를 뜯어본 것이다.

    꼬박 밤을 새워가며 어떻게 분해는 해서 내부를 들여다보기는 했는데, 아무리 해도 조립은 할 수 없었다. 도저히 조립을 못해 수리 점에 갖다 맡기기를 몇 차례 반복하다 결국 헐값에 팔아 치웠다. 그 당시 서울에 옛 카메라수리점이 몇 군데 있었다. 하지만 라이카를 전문으로 수리하는 곳은 없었다.

    모든 취미생활이 그렇지만, 카메라 수집에도 많은 돈이 든다. 클래식카메라의 전성시대에 나온 라이카나 콘탁스 같은 이른바 명기들은 흔한 말로 ‘집한 채 값’이었던 것들이고 보니 더욱 그랬다. 물건에 욕심은 나고, 그러나 백수 주제에 돈은 없고... 특히그 무렵 우리나라의 클래식카메라 시세는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 독일제이면서 좀 깨끗하면 메이커나 모델을 불문하고 최소 30만 원 선이었다.

    수집을 시작한 그 해 1998년, 이베이(eBay)를 알게 된 것은 말하자면, 목마른 놈이 물을 찾다 샘을 만난 격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거의 매일을 클래식카메라에 빠져 자료 등을 뒤지다가, 어느 날 인터넷을 서핑하다 검색사이트에서‘classic camera’를 입력했다가 발견한 곳이 바로 이베이였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베이를 이용하는 호사가들이 많지만, 그 당시에는 아주 드물었다. 그 사이트에, 좀 과장해서 말하면 산더미 같이 쌓여있던 클래식카메라. 앞 뒤 재볼 요량도 없이 무작정 이베이의 바다로 뛰어 들었다.

     

     

                                                                    (Braun Paxette outfit)

     

    첫 경매에 들어가 사들인 것이 브라운 팍세트(Braun Paxette)카메라. 바디와 렌즈 3개(표준,광각,망원),오리지널 가죽케이스, 그리고 송료를 합쳐 들인 돈이 135달러. 그러나 그 귀엽고 앙증맞은 카메라도 오래 지니지 못했다. 호기심 삼아 소공동 지하 카메라숍에 갖고 나갔다가 48만원을 주고 판 것이다.

    한 마디로 이 것은 나로서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취미로 시작한 클래식카메라 수집은 이런 경우 호구지책과도 연결되는 비즈니스의 측면도 갖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처분하는 것은 물론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고 생계의 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과정, 이를테면 팔기도하고 사기도하는 과정을 지나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은 카메라뿐이다. 이상하게 그렇게 된다. 처분하고 나면 상실감에 다시 사들여서 그렇게 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그런 줄을 알면서도 계속 그 과정을 되풀이 한다. 어떤 일에 깊숙이 빠지는 매니아들의 속성은 빠지고 있는 행위의 결과를 당사자가 뻔히 잘 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는 것이다. 항상 그 자리로 오는데도 막상 빠져있을 때에는 그 것을 모른다.

     

     

                                                                        (Weltini)

     

     

     

                                                                              (Diax IIb)

     

     

                                                                          (Akarex III)

     

     

    한 4년 수집을 해오면서 적잖은 양의, 그리고 각양각색의 클래식카메라를 만져보았다. 많이들 처분도 하고 교환도 해봤다. 카메라 모두를 좋아하지만, 수집해 놓은 카메라 가운데서도 특히 애착이 가는 것들이 있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라이카, 짜이스 이콘 등 명품들에 애착이 많이 갔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명품보다는 별 큰 명성 없이 나왔다 사라져 간 사진기들에 더 큰 정을 느낀다.

    독일 벨타(Welta)사의 벨티니(Weltini)라든가, 포스(Voss)사의 디악스(Diax), 그리고 아카(Aka)사의 아카렉스(Akarex)카메라 등이 그 것들이다. 슈나이더 렌즈를 장착한 폴더형의 벨티니는 지금도 필름을 넣어갖고 다니면서 찍기도 한다. 접으면 손바닥에 착 안기는데, 사진도 참 좋다. 디악스와 아카렉스로는 흑백필름을 잘 넣어서 찍는다. 이 것들에서 나오는 사진들을 나는 참 좋아한다.

     

     

                                                                      (Nagel Pupille)

     

     

    사연을 간직한 카메라는 그 것 때문에 애착이 간다. 나겔 쀼삘레(Nagel Pupille)는 드물게 사람 이름을 딴 1930년대 127필름을 쓰던 랜지파인더 카메라이다. 나겔은 원래수많은 명기를 생산해 낸 짜이스 이콘의 수석기술자였다. 많은 카메라들이 그의 손으로부터 나왔다. 그러나 그는 수석기술자임에도 불구하고 짜이스 이콘에서 그에 걸맞는 대접을 받지 못한다. 이유는 학력이 모자라기 때문이었다. 나겔이 그에 불만을 품고 나와 자신이 직접 만든 것이 나겔 쀼삘레이다.

    나겔은 그 카메라의 명성 덕에 코닥(Kodak)사로 스카우트된다. 코닥에서 나온 나겔시리즈의 카메라는 모두 그가 만든 것들이다.

    클래식카메라를 수집하는데 있어 신경 쓰이게 하는 부분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돈 문제는 말할 것도 없이 큰 부담이다. 카메라 값이 한두 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클래식카메라를 수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돈이 많은 호사가들일 것으로 보이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돈보다 카메라’라는 말로 클래식카메라 매니아들을 규정짓는 측면이 없잖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다. 이 방면의 사람들이 서로들 판매와 교환을 많이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새로 구입할 돈의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보관과 수리문제도 수집가들에게 큰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한 두어 대면 모르겠지만,몇 십대, 몇 백대로 넘어가면 보관이 골칫거리다. 큰 집을 갖고있고 여유있는 처지라면,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고 습도장치등 특수장치로 보관할 수 있을 것이지만, 이런 처지의 수집가들은 많지않다. 그저 집안의 빈 공간을 활용해 하나하나 씩 보관하다가, 나중에는 둘 곳이 마땅찮아 쩔쩔매는 경우도 적잖게 듣고 본다.

    사진기라는 것이 기온과 습도의 변화에 민감한 렌즈와 정밀기계로 구성되어지는 만큼 그 보관방법도 여간 까다롭지가 않다. 사정이 여의치 않은 입장에선 별 다른 방도가 없다. 집안에서도 통풍이 잘 되고 습도가 가장 낮은 곳에 두는 것이다. 케이스는 별도로 보관해야 하고, 렌즈는 될 수 있으면 본체로부터 분리시켜 놓는 것이 좋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닫혀진 것보다는 열려진 공간, 예컨대 창문이 없는 찬장 같은 곳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오래된 것들이기 때문에 수시로 점검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고장이 생긴다. 보관을 잘못해도 그렇다. 그러면 수리를 해야 한다. 수리비도 만만찮고 믿고 맡길 수리점도 찾기가 쉽지 않다. 특히 라이카 등 명기의 수리는 한두 푼 드는 것이 아니고, 걸 맞는 기술자도 별로 없다.

    인터넷의 클래식카메라 전문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수리문제와 관련한 글들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믿고 맡길만한 수리 점을 소개해 달라는 것에서부터 맡겼다 낭패를 봤다는 고발성의 글까지 다양하다. 나도 이 문제로 골치를 썩인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다 어떻게 만나게 된 정씨 성을 가진 수리분야의 어떤 기술자 양반과 한 5년을 알고 지낸다. 일주일에 한 번 쯤은 그의 수리 방엘 들린다. 그리고 수리하는 것을 지켜본다. 나는 수리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재미있고 좋다. 카메라 수리를 맡기고도 가능한 한 수리과정을 지켜본다. 자기 기술을 누가 지켜보는 것이 그리 기분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그 분도 처음에는 좀 언짢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도자주 가니까 친해졌고, 이제는 지켜보는 것을 암묵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 양반에게 친숙함과 이기심을 동시에 갖는다. 이기심적인 것은 그가 가진 수리기술 때문이다. 내 이기심은 그 양반이 별 탈 없이 오래 살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늙고 병든 사진기의 생명이 그에게 달렸기 때문이다. 클래식카메라에 대한 애정이 이 지경에까지 뻗칠 줄을 나는 몰랐다.

     

     

                                                                  (Leica Reporter 250)

     

     

     

     

                                                                       (Contaflex TLR)

     

     

    나는 32평 아파트에 사는데, 집안 곳곳에 카메라다. 안방 찬장과 거실의 진열장, 그리고 후배가 유럽에서 가져왔다는 오크나무로 짠 대형 목재수납장에 넣어 보관하고 있다. 케이스만 별도로 넣어 둔 가방과 종이박스는 베란다 창고에 있다. 아웃핏(outfit) 가죽케이스 등도 곳곳에 널려있다. 남들이 보면 상당한 양이다.

    그러나 처분과 교환 등으로 없어진, 아끼던 카메라에 대한 애착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진다. 정말 소설 같이 구한, 1930년대 기자들이 보도용으로 쓰던 라이카 리포터 250(Leica Reporter 250)이라든가, 콘타플렉스 TLR(Contaflex Twin Lens Reflex)같은 카메라는 아직도 가끔씩 꿈에 어른거리기도 한다. 어렵게 구한 것들인데, 둘 다 지금은 없다.

    클래식카메라를 알게 되면 그 카메라들의 속성상 나이가 들수록 더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 이 방면의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다. 나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그러다 보면 현실과 동떨어진 방향으로 수집에 몰두하게 되는데, 이에 대한 가족이나 주변의 우려 섞인 시선이나 질책이 없을 수 없다. 어떤 일이나 물건에 빠지거나, 좀 심한 말로 미쳐 있을 때는 남의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이는 분명 경계해야할 부분이다.

    나라고 그 것을 모를 리가 없다. 간혹 돈 문제로 형편이 좀 어려워진다거나, 보관상의 문제로 카메라 고장 등이 생겨날 때, 내가 좀 필요이상으로 민감해진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걸 내가 알게 된 것은 몇 번에 걸친 주변의 지적 때문이다. 이제는 그런 감의 조짐을 잘 안다. 그럴 땐 얼른 정신을 가다듬는다. 주변의 시선과 생각, 그리고 생활과 현실에 맞게 그 쪽으로 나를 이입시키는 것이다. 생활과 현실에 맞춘 수집 쪽으로 방향을 틀어가고 있다는 얘기다.

     

     

                                                                       (Kodak Ektar)

     

     

     

                                                                     (Robot Royal 36)

     

    하지만 그런 방향이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실행이 잘 안 된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하는 습벽 같은 것이 있다. 구조와 작동이 복잡한 코닥 엑타르(Kodak Ektar)나, 로봇 로얄-36(Robot Royal-36)같은 카메라를 닦아주고 구조를 점검하는데 몰두하는 버릇이다.

    아니면, 보잘 것 없고, 이름도 없어 별로 거들떠보지 않던 사진기를 온갖 정성을 다 쏟아 손질을 한다. 그리고 그 것으로 사진을 찍어본다. 그리고 그 사진을 보는 즐거움. 사진이 잘 나오고 안 나오고는 별 문제가 안 된다. 죽었던, 혹은 죽어가던 카메라를 다시 살려냈다는 희열감을 느낀다. 거의 고질처럼 됐다.

    모두가 잠들어 조용한 밤. 낡고, 그리고 아주 늙은 이름없는 사진기를 닦고, 만지작거리면서 불면의 밤을 보낸다. 세워놓고 보기도 하고 눕혀놓고 보기도 하고, 셔터도 눌러본다. 뿌연 기가 맴돌고 표면에 스크래치가 덕지덕지한 렌즈를 가만 들여다 본다. 푸른 이끼가 끼고 아침안개가 감도는 호수같다. 이 렌즈 앞에 섰던, 혹은 스쳐지나 갔을 수 많은 군상과 역사를 생각해 본다. 그 렌즈 속에 내가 빠져 버린다.

    어느 좋은 시절, 클래식카메라의 전성시절이었을 것이다. 내가 콘타플레스 TLR의 알바다 파인더를 들여다보고 있다. 카메라 앞에 젊은 신랑각시 모습의 아버지가 어머니와 함께 서 있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선, 두 분의 아름다운 모습을 육중한 콘타플렉스 TLR로 ‘백이고’있다.(2000. 4)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