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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쓰던 USB 스틱 하나를 책상서랍 한 구석에서 발견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의 글과 사진들이 담겨있다. 그러니까 10여년 전의 것들이다.
쓴 글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기억을 헤집으니 금방 감이 온다.
하지만 사진들은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한 친구의 사진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다 찍었는지 모르겠다.
2009년, 그리 내밀하지 않던 우리 집 안방 풍경을 담은 사진이다.
그 무렵의 나를 드러내는 가장 괄목할만한 아이콘은 오래 된 올드 카메라들인데,
이 사진 한 장에 그게 온전히 담겨져 있다. 진열장 안에 카메라들이 즐비하다.
그 때는 저 카메라들 말고도 거실의 큰 서랍장에 카메라들이 가득했다. 아내가 진절머리를 낼 정도였다.
한창 모으는 한편으로 호구지책으로 딜링(dealing)도 많이 할 때다.
저 진열장은 지금도 안방에 있지만, 저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비워져 있다.
책상 컴퓨터 위 액자 속 사진은 '라이카 트리(Leica Tree, 혹은 Leica Stanbaum)'로,
라이카에서 출시한 모델의 역사를 담고있는데, 저 액자는 아직 그대로 걸려있다.
프린터와 스캐너까지 갖춰져있는 것도 순전히 카메라를 위한 것이다.
저렇게 살고있을 적에 나는 행복했었을까.
이게 언제 어디서였을까.
기억을 한참 되살려가니 2009년 겨울, 재경 마산향우회의 어떤 행사장 자리였던 것 같다.
카메라를 들고있으니 이 분들이 나를 보고 우리 좀 찍어달라고 했다.
마산 성호국민학교 아니면 제일여고 동창들끼리 앉아들 있었다.
그들 사이에 있던 김혜정(오른쪽 세번째)씨.
1960, 70년대를 풍미했던, 한국영화계에서 마릴린 먼로로 불려지던 배우였다.
나의 성호국민학교 선배이기도 하다. 그때 인사를 나눈 후 몇 차례 자리를 같이한 적이 있다.
두주를 불사하던 호방하고 쾌활한 분이었다.
김혜정 선배는 나의 한 선배의 진솔한 로망이었다. 그 선배는 어떤 계기로 만나보게 된 자리에서 같이 술을 마셨다가, 대짜로 뻗었다는 얘기가 전할 정도로 술이 셌다.
2015년 겨울인가, 새벽 기도회에 가는 도중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이 사진을 보니 예전의 그 다정다감하고 쾌활했던 모습이 떠올려진다.
친구 이주흥 변호사의 곤히 자고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아무리 기억을 헤집어 봐도 언제 어디서 무얼 하다 이 사진을 찍었는지 모르겠다.
친구의 행색, 특히 신발이 등산화라는 점에서 어디 산행 후 누구 사무실에서 찍은 것 같은데,
눈에 익숙한 사무실은 아니다. 사진 정보에 2009년으로 나와 있으니, 그 해 찍은 것은 분명하다.
등산복으로보아 가을 쯤으로 여겨지는데, 아마 산행 후 어디서 뒤풀이를 하고
다른 친구 사무실에 왔다가 잠에 빠진 친구를 찍은 것 같다.
이 사진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친구는 2년 전 3월, 세상을 떴다.
참 건강했었는데, 그 몸에 얄궂은 병마가 덮쳤다.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친구의 부인이 마침 연락을 해 왔다. 우연치고는 참 희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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