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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대국 한 그릇 - 반세기 만에 만난 옛 군대선배
    추억 속으로 2021. 9. 5. 13:30

    "순대국이나 한 그릇 얻어 먹겠습니다."

    48년 만에 만난 옛 군대 선배가 통화 마무리에서 한 말이다.

    거의 반세기 전 어느 날 우리들은 문산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 양반은 연대인사과 호송병, 나는 전출병.

    우리들은 그 날 아침 일찍 임진강을 건너 파주 광탄 사단사령부로 가고 있었다.

    나를 그곳에 인계하기 위한 것이다.

     

    문산 버스차부에서 그 양반이 나를 근처 순대국 집으로 데려갔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 또한 인연이니 순대국 한 그릇으로 마무리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사령부에 인계한 뒤 헤어졌다.

     

    그 양반과 무려 48년 만에 어제 통화가 이뤄진 것이다.

    만나게 된 사연은 이렇다.

    나로서는 그 양반 생각이 많이 났다. 이름이 독특했고,

    어쨌든 나를 DMZ에서 임진강 건너 후방으로 데려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연대인사과 사병으로서 소총소대에 있는 나를 사단사령부로 전출시킨 장본인이나 마찬가지다.

    사단 주특기인 나를, 열명 이상되는 같은 주특기자들 가운데서 뽑아 상신했고,

    나는 소 바늘귀 지나는 것처럼 어려운 과정에서 선발돼 임진강을 건넌 것이다.

    그래서 그 양반 이름을 나름 간직하고 있었고, 이런 저런 글에서 그를 언급하고 했던 것이다.

    그 글을 그 양반의 아들이 어딘가에서 보고 나에게 연락을 해 왔고,

    그래서 자기 아버지인 '박평양' 그 분과 통화가 이뤄진 것이다.

    둘의 통화는 어쩌면 기억 되찾기를 경쟁하는 것 같았다.

    물론 그 양반은 그 당시 내가 많은 전출병들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에 기억하는 정도가 나만은 못했다.

    내가 하나 하나 들먹이면 그 양반이 맞장구치는 그런 식의 기억 되찾기였다.

     

    이런 통화에서 그 양반이 기억하고 있는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15연대 인사과에 같이 근무했던 한 양반에 대한 기억인데,

    다름아닌 유 아무개라는 그 나의... 로 시작하는 답사기로 유명한 그 사람이었다.

    통화가 오래 지속될 수 밖에 없었다. 그 분이나 나나 이제는 70줄의 나이이니,

    그 청춘의 시절의 기억과 추억을 어찌 짤막한 전화통화로 담을 수가 있겠는가.

    울산에 사신다면서 가끔 아들들 보러 올라온다고 하길래 꼭 연락을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그렇다.

    "순대국 한 그릇은 꼭 얻어 먹겠습니다."

    48년 전 문산 버스차부에서 나에게 사준 순대국 한 그릇을 갚아가는 것이었다.

    (사진은 작년 이맘 때 쯤 가본 옛 문산 역과 시외버스 차부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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