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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에 생각나는 사람사람 2021. 6. 6. 10:29
나에게 현충일은 호국영령에 대한 추모와 함께 한편으로 옛 군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날이기도 하다. 거의 반세기 전이지만, 아직도 또렷하게 남아있는 나의 빠릿빠릿한 청춘의 한 시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임진강을 건너 송악OP 통신병으로 6개월 정도 있다 다시 강을 건너 페바(FEBA) 지역인 파주 광탄 1사단 사령부로 온 게 1973년10월 경이다. 거기서 통신보급소 서무계로 75년 11월 제대할 때까지 근무했다.
돌이켜보건대 아마 전생을 통털어 가장 머리가 잘 돌아가고 감성이 풍부하고 행동 또한 민첩했을 때가 그 시기일 것이다.
군대시절 함께 했던 사람들. 가운데 앉아있는 분이 김영준 대위. 가운데 줄 왼쪽이 나다.
그 시절의 함께했던 사람들이 우선 그립다. 서너 명은 연락이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10여년 전부터 그 가운데 한 분인 당시 김영준 대위를 찾아보려 무척 애를 썼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아마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이봉준이라는 사람이다. 나보다 여섯 살이나 나이가 많았고 결혼을 한 상태에서 우리 부대로 왔다. 졸병이었지만, 내가 나서서 잘 거들어주었다. 사단장 테니스코트 관리병 보직을 맡아 거의 코트 락커룸에서 지낼 때가 많았다.
나와는 주로 일과 후 야심한 밤에 테니스코트 락카룸에서 만났다. 그는 야전잠바 주머니에 고량주를 잘 넣어 다녔다. 둘이서 그걸 마시며 밤에 기타를 치고 놀았다.
그 당시로는 귀중한 크리스 크리스토퍼슨과 레너드 코헨 송북(songbook)을 갖고서 그 사람들의 노래를 썩 잘 불렀다. 탭 하모니카도 곧잘 불었다. 크리스토퍼슨에게서 받은 것이라고 했다.
음악도 그랬지만, 문학에도 해박하고 밝았다. 랭보나 뽈 엘뤼아르 시를 원문으로 줄줄 외고 있었다. 하는 짓이 보통 사람과는 확연히 달랐다. 내가 생각하기로 히피적인 소양이 풍부했던 사람이 아니었던가 싶다.
부인이 가끔 면회를 오면 함께 나가곤 했다.
처음 만난 날이 생각난다. 부인이 자신을 소개하면서 "양공주예요"라고 했다. 이화대를 나온 그 부인의 이름이 양공주였던 것이다. 용주골이 근처에 있던 시절이라 그 이름을 생생히 기억한다.
나의 제대 무렵 이봉준 씨와 함께 찍은 사진. 사진 뒤에 1975년 9월이라고 적혀있다.
그 사람이 나의 제대 무렵 나에게 제의를 했다. 신촌 이화대 앞에 가게가 하나 있다. 자기 제대 후 나와 포크송을 중심으로 하는 뮤직바를 함께 하자는 것이다. 미국 내쉬빌의 어느 길거리 주점을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건성으로 들었다.
제대 후 종로에서 만났다. 그 얘기를 다시 하는 것이다. 나는 또 건성으로 그러고마고 했다. 하지만 나는 취직을 했다. 그 얼마 후 만났더니 실망감을 보이면서 당장 회사를 그만 두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회사를 계속 다녔다. 내가 그러면서 그도 그 계획을 접었던 게 아닌가 싶다.
내 결혼 후 만났다. 성북동 갈멜수녀원에서 스테인드 글라스 공부를 하고있다고 했고, 그 공부를 위해 곧 유럽으로 떠난다고 했다. 나는 먹고살기 바빠 또 건성으로 그 얘기를 들었다.
그리고 그 얼마 후 만났더니, 종로3가에서 레코드 가게를 한다고 했다. 동업을 한다고 했다. 박인희라는 여자라고 했다. 박인희가 누구인지는 잘 알 것이다. 그게 1980년대 중반 무렵이다.
그리고는 소식이 뚝 끊겼다. 종로3가 레코드 가게로 가봤더니 주인이 바뀌어 있었다.
그 때로부터 그 사람을 찾고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 글을 혹여 보신다면 연락이나 줬으면 좋겠다.
그 사람을 조금이라도 알고 계신 분들이라도 그래줬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말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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