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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금散調의 名人, 김평부사람 2021. 8. 8. 08:55
금요일 저녁, 낮술로 얼큰해진 가운데 '흰당나귀'를 나서려는데 귀한 분을 만났다. 내가 그 분을 알아봤는지, 그 분이 나를 먼저 알아봤는지 모르겠다. 김평부라는 분. 대금산조의 名人이다. 얼마 전 어디선가 우연히 이 분에 관한 글을 본적이 있다. 서울시내로 나와 인사동에 거처를 마련했다는 소식이었다. 그걸 아마 그날 만난 자리에서 확인했을 것이다.
김평부라는 이름보다 '숨'으로 잘려진 이 분의 원래 거처는 북한산 산속이었다. 흥국사 쪽 깊숙한 산골에서 홀로 대금을 불고있던 이 분을 지난 2013년에 만났다. 한나절 '숨 산방'에서 대금을 듣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 때 쓴 글을 찾아보니 나온다.
이 분이 북한산을 떠나 다른 곳으로 옮겼다는 얘기는 훨씬 전에 들었다. 2013년 만나 얘기를 나눌 때, 북한산을 영원히 떠나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간 이러저런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취했으니 그랬을 것이다. 어정쩡한 상태로 얘기를 나누는 게 딴에는 여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또한 코로나 시국이니 어쩔 수가 없는 노릇아닌가. 다시 보기로 하고 헤어졌다.
아래 글은 2013년 4월, 김 숨 명인을 만난 후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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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숨' 닮은 ‘삼각산流’ 대금산조 名人 …
“아직도 나는 수련자의 길에 있습니다”
“樂이란 하늘에게서 나와 사람에게 붙인 것이요, 虛에서 발해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사람의 마음으로 하여금 느끼게 하여 혈맥을 뛰게 하고 정신을 유통시키는 것이다. 느낀 바가 같지 않아서, 기쁜 마음을 느끼면, 그 소리가 날려 흩어지고, 노한 마음을 가지면 그 소리가 거세고, 슬픈 마음을 느끼면 그 소리가 애처롭고, 즐거운 마음을 느끼면 그 소리가 느긋하게 되는 것이니…(樂也者 出於天而寓於人 發於虛而成於自然 所以使人心感 而動 血 流通精神也 因所感之不同 而聲亦不同 其喜心感者發以散 怒心感者粗以 哀心感者 以殺 樂心感者 以緩…)” 우리 전통음악인 국악의 근원과 본질, 그리고 그 기능을 함축한 『樂學軌範』의 서문에 나와 있는 글이다. 이 서문을 관통하는 핵심은 바로 음악과 자연과의 합일이다. 말하자면 음악은 자연에서 비롯된다는 것이고, 그것을 바탕으로 했을 때 진정한 음악이 나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樂學軌範 서문, 그 정신을 규범으로 삼다
경기도 고양시 삼각산 자락의 산 속에 살고 있는 김평부(52)는 『악학궤범』의 이 서문을 자기 음악활동의 규범으로 삼고 있는 좀 특이한 국악인이다. 삼각산 생활이 자그마치 이십 년을 훨씬 넘겼다. 그에게 거대한 자연인 삼각산은 그의 음악의 원천이고 천혜의 수련장이다.
산은 자연의 울림장(場)이다.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는 그 자체들로는 獨音이지만, 함께 할 때는 거대한 오케스트라가 된다. 철마다 바뀌는 계절의 변화는 자연의 이치를 일깨워 주면서 생각의 여지를 넓혀준다. 김평부는 그 속에서 구도자의 자세로 자신이 추구하는 국악을 갈고 닦는다. 우리나라 국악계에서 김평부는 그의 표현대로 하자면 ‘미약한 존재’이다. 화려한 학력과 이력도, 그리고 전가의 보도처럼 달려있는 수상 경력과 연주회 경력, 그리고 작품 음반 등도 없다. 그러나 알음알음으로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그의 국악에 대한 진지함과 인간됨, 그리고 무엇보다 빼어난 연주솜씨 때문이다.
김평부는 대금과 판소리, 장구와 북 등 국악의 모든 부분을 섭렵한 국악인이다. 그러나 그의 국악은 거의 독학 수준이다. 그는 국악을 포함해 자신에 대한 얘기를 잘 하지 않는다. 과묵하고 겸손한 성격이기도 하지만, 그게 뭐 중요하냐는 투다. 그의 국악 수련과 관련해 겨우 얻어낸 대답은 이것이다. “여러 가지 조금씩 합니다. 그러나 한다하는 소리는 할 수가 없지요.
너무 일천하고 실력이 짧으니까요.” 독학 여부에 대해서는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정규과정을 거쳐 정식으로 배웠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금도 어떤 사찰의 스님과 국립국악원에 계신 분들로부터 사사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어느 학교와 어떤 스승 인지 더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김평부가 사실 우리들에게 알려진 것은 그의 빼어난 대금 실력 때문이다. 그의 대금 소리를 들어본 사람들은 그에게 ‘명인’이란 호칭을 부여함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명인’으로 대접받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그의 대금 연주를 들어보면 그가 대금산조의 ‘명인’인 것만은 틀림이 없다.
소쩍새와의 인연 통해 가다듬은 散調
역대로 대금을 잘 하는 분들에게는 그 이름을 따 무슨 ‘流’의 파가 따른다. 이를테면 ‘이생강流’, ‘원장현流’ 등이 그것이다. 그러면 김평부는 어느 류파인가. 그는 ‘원장현류’임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산조대금은 정악대금과는 달리 떠는 소리, 소리를 흘러내리고 밀어 올리는 기법과 감정을 격렬하게 표현하는 것이 특징인데, ‘원장현류’ 대금산조는 음계변화가 다채로우며 자연스러우면서도 꿋꿋하고 강렬한 생동감을 느낄 수 있는 게 특징이다. 김평부는 이에 더해 삼각산의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를 나름대로의 대금산조류로 풀어내려 한다. 말하자면 대자연의 호흡이 음악이듯, 삼각산의 호흡을 대금산조에 담으려는 것이다. 그는 대금을 분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나무와 함께 숨을 쉰다고 말한다.
들숨과 날숨이 바람이 되고 바람이 소리가 되기 때문이다. 김평부는 이와 관련해 “산조는 정악처럼 정형화돼 있는 게 아니고 자기류로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김평부의 대금산조를 ‘삼각산류’로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는 삼각산 수련과정 중에 수년 전 이상한 경험을 한다. 소쩍새의 울음, 그러니까 이 새의 우는 성법이 대금주법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어느 해 봄날, 집을 비우고 나간 사이 소쩍새 한 마리가 방안에 들어와 있었다. 사람을 봐도 무서워하지도 않고 잡아도 버둥거리지 않았다. 날려 보내 준 며칠 후 그 소쩍새가 다시 밤에 찾아 들었다.
괴이한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숲으로 돌려보내고 얼마나 지났을까, 아침에 방문을 열고 나가니 소쩍새 한 마리가 죽어있는 것이 아닌가. 그날 밤 짝을 잃은 소쩍새 한 마리가 방문 앞에 날아와 밤새 구슬피 울었다. 대금으로도 쉽게 찾아낼 수 없는 소리였다. 죽음을 이야기 하려는 듯한 애절한 곡조의 전형을 거기서 봤다. “소쩍새는 아마도 이 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익숙한 대금가락을 듣기 위해 왔다가 낭패를 당했는지도 모르지요.” 김평부는 삼각산 소쩍새와의 이런 인연을 통해서도 홀로 대금산조의 음률을 가다듬고 익혀간다.
‘숨 산방’과 대학로 등에서 국학교실 열어
김평부는 북한산에서 국악수련을 위한 獨功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국악을 가르치고 알리는 일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은 중단된 상태지만, 서울 동숭동 대학로에서 수년 간 문화교실을 열어 전통국악을 가르쳤다. 강화도의 몇몇 대안학교 등에서 국악을 가르친 지도 7년이 넘었다. 그는 23년 째 기거하고 있는 자신의 삼각산 거처를 ‘산방’이라고 부른다.
산방 앞에 ‘숨’을 붙여 ‘숨 산방’이라 고 한다. 숨은 말 그대로 우리가 호흡하는 그 숨이다. 그가 좋아하는 우리 말 중의 하나가 바로 ‘숨’이고, 그 배경에는 대금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 숨은 자연의 바람과 더불어 생명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쌍골죽 대나무와 함께 숨을 쉬는 게 대금산조이고 보면 사람의 숨은 또 대금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중요한 요소가 아닌가. 김평부는 이 ‘숨 산방’에서 대금, 판소리, 장단을 가르치는 국학교실도 열고 있다. 알음알음으로 해서 그의 ‘숨 산방’을 찾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들 중 김평부의 자연과 국악에 대한 사랑, 그리고 뛰어난 국악 솜씨를 닮고 배우고자 개설된 교실이다. 그의 명성은 대금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판소리도 그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분야다. 가끔씩 불려나가는 국악음악회에서 김평부는 대금과 함께 판소리도 한다. 지난 12일 광화문광장에서 한민족운동단체연합 주최로 개최된 ‘민족방풍대동제’에서 김평부는 북을 잡고 판소리 한 마당을 펼쳐 갈채를 받았다. “판소리를 그저 어깨너머로 조금 배운 것일 뿐이다”라고말하는 그의 겸손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평가는 그를‘소리꾼’으로 부르는데 인색하지 않다. 그는 이즈음 우리의 전통 판소리를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하나의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른바 ‘詩 소리’라는 것으로, 좋은 시를 판소리 성법으로 부르는 것이다.
詩는 현대시든 옛날 시든 가릴 게 없다. 그는 ‘시 소리’가 판소리를 알리는 한편으로 대중을 위한 작업이라고 했다. 대중이 모이는 어느 자리든 그에 맞는 좋은 시가 있게 마련이고 그 것을 판소리化 해 부름으로써 모임의 호흡을 북돋울 수 있기에 적합한 소리요 노래라는 것이다. 그는 몇 편의 ‘시 소리’를 만들어 들려주고 있는데, 이들 중엔 이생진 시인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와 이원규 시인의 「행여 지리산으로 오시려거든」도 들어있다. 김평부의 음악은 다시 『악학궤범』의 정신으로 귀결된다. 좋은 음악이란 무엇인가고 물었을 때 나온 대답이 그렇다. “말을 하면 일단 그 말의 의미가 전달돼야 하듯이 소리가 일어나면 그 소리가 어떤 말을 하고 있다는 그런 것이 정립돼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 몸에 다가와 그 파장이 편안하고 자유롭고 안정되게 그런 느낌으로 다가와야 좋은 음악이지요. 이게 악학궤범이 갖고 있는 정신이고, 이 정신은 시대를 관통하는 것입니다.” 김평부는 다시 한마디를 더 보탠다. “음악은 자연에서 발했으나 궁극적으로 그것을 사람이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음악하는 사람들의 자세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음악 통해 세상의 변화 추구하기도
이런 관점에서 김평부는 음악을 통한 세상의 변화를 추구하고도 있다. 그를 중심으로 한 모임이 지난 3월에 만들어졌는데, 이를 위한 한 출발점이다. 소리문화공연연대인 ‘함성’이 그 것으로, 김평부는 우리 국악을 중심으로 한 이 모임의 정기적인 공연을 통해 자유와 평화, 그리고 우리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목소리를 낼 계획이다. 50대 초반의 김평부는 자신의 개인 신상에 대해서는 몇 가지를 빼고는 끝까지 입을 다물었다. 전남 장흥이 고향이라는 것, 서울엔 10대 후반에 올라왔다는 것, 그리고 경기도 벽제에 한 6개월가량 살다 도저히 국학 수련을 할 수 없어 홀로 짐을 싸들고 삼각산으로 들어왔다는 것. 그것 뿐인가. 또 한 가지 있다.
남들은 여러 번도 한다는 결혼을 아직 한 번도 못했다는 것, 그러니까 여태 혼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수년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 기사를 봤더니 한때 서울 인사동에서 필방을 하기도 했다고 쓰여 있다. 그걸 물었지만, 더 이상의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국악을 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도 말을 아꼈다. 몇 번을 묻자 나온 말은 ‘상여소리’였다. “장흥에서도 외딴 집에 살았습니다. 사람이 죽어 상여가 나가면 반드시 우리 집 앞을 지나쳤는데, 집 뒤가 바로 공동묘지였기 때문이었지요.
이 때 상여소리와 요령소리를 많이 들었고, 어릴 적부터 귀에 익어졌는데, 별달리 특별한 동기가 없는 만큼 아마 이게 영향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삼각산 생활이 궁금했다. 그의 산막은 삼각산 서북지역의 꽤 이름 있는 사찰 곁에 있다. 그래도 한적하고 적막하기 이를 데 없는 벽지나 마찬가지다. 외롭고 불편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매사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일축했다. 김평부는 갑자기 「心遠地自偏」이라는 陶淵明의 시 한 구절을 웅얼거린다.
“마음이 멀어지면 있는 곳 자체가 외진 곳이 됩니다. 역으로 한번 생각해보시라”는 것이다. 앞으로도 북한산에 계속 살 거냐고 물었다. 당연히 그럴 거라고 했다. “삼각산은 내가 다듬고 익히고 추구하는 국악의 원천이자 터전입니다. 여기를 벗어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삶도 누구나 홀로 걸어가듯 음악도 결국엔 독공의 단계가 필요하지요. 산 속 생활은 진짜 제 것을 만들어 가는 수련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도 나는 수련자의 처지입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출처 : 교수신문(http://www.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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