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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컬 렉 션 2011. 1. 7. 13:34

    詩,

    잘 알 것 같기도 하면서

    잘 모르는 것.

    멀리 있는,

    나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듯 하지만,

    어느 때,

    골육에 사무친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것.

     

    아침 밥상머리.

    간밤의 헝클어진 생각들은 그대로다.

    허기?

    좀 유치 찬란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때,

    눈에 들어오는 한편의 詩,

    가슴을 때린다.

     

    삶은 유치하지만 그래도 찬란하다.

    문득 커밍 아웃이 하고 싶은 아침,

    그리고 이 한편의 詩...

     

     

     

     


    바구니 속의 계란 -  최영숙 (1960 - 2003)


     

    나는 아름다운 장기수
    탈출을 꿈꾸지
    결혼해 일년 반, 임신 육개월의 배를 끌어안고서
    주위를 둘러싼 소리 없는 장막
    저 찬란한 가을햇살을 찢고 달아나는 탈출을 꿈꾸지

     

    꿈꾸는 성
    꿈꾸는 태아
    문지방에 기대앉아 대문 밖을 보노라면
    나가자고, 자꾸만 머얼리 저어가자고
    뱃속의 태아가 툭툭 발을 차네
    소싯적 내 젊은 어머니, 가을 마당 햇빛 속에 물끄러미 서 계시네

     

    나는 치밀한 탈옥수
    냉정을 가장하네
    뒷덜미를 끄는 햇살, 파도를 밀고 나가면 어디가 될까
    갈대방석 위에 양팔 벌리고 누워 두웅-둥
    나 누더기 되어 난바다로 떠내려가네
    파란 하늘 파아란 구름 힘껏 들이마시며
    뱃속의 아이에게 들릴 만큼 놀랄 만큼
    소리질러야지
    “계란 사시오, 계란 사시오오-”

     

    깨지는 건 순간이야
    앞뒤 구멍 내서 날계란 후루룩 마실 때의
    비릿한 뒷맛
    손에서 미끄러지면 끝장인 껍질
    삶의 껍질을 끝까지 벗겨본 적 있던가
    바구니 속의 계란 삼십개
    고이 들고 온 이것이 인생의 황금기였나
    미끈, 바닥으로 떨어뜨리면
    한꺼번에 계란프라이 해먹어도 좋을
    잘 달구어진 가을햇살, 햇살

     

    - 최영숙 유고시집 '모든 여자의 이름은' 중에서

     

     

     

     

     

     

    “만두처럼 빚어져 순해지리라” 최영숙 유고시집 ‘모든 여자의 이름은’





    “이제 내게 허락된 시공간을 받아들여야할 때가 된 것 같다.
    미리 써보는 이 후기가 수정되길 바라면서 두번째 시집은 내 손으로 엮기를 바랐으나,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한다.
    살아,많은 게 슬펐지만 또한 기쁘고 아름다웠다.
    사랑하는 이들이여,이제는 안녕.”

    시집 뒤에 붙어있는 ‘미리 쓰는 후기’가 아리다.
    2001년 심장병에 더해 루프스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2003년 10월 29일 합병증으로 43세의 생을 마감한 최영숙(1960∼2003) 시인.
    3주기에 맞춰 출간된 유고 시집 ‘모든 여자의 이름은’(창비)은
    자신의 몸에 차오른 죽음을 어디든지 데리고 다녔던 동행(同行)의 기록이다.
    죽음과의 동행이라고 했지만,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에 대한 기록은 그 고통으로 인해 과잉되게 마련인데
    최영숙의 시가 뛰어난 지점은 그 과잉을 절제하면서 삶과 생활을 다독이고 있다는 데 있다.

    그중에서도 좁은 분식집의 고요한 풍경을 그린 ‘옛날 손만두집’은 만두집 여자의 손에서
    만두가 빚어지고 김이 펄펄나는 솥에서 익어가는 과정을 통해 탄생과 죽음의 문제를 직관하는 수작으로 꼽을 만하다.
     
    “어쩐지 말이 없는 그녀는 내가 김밥을 다 먹도록 하나 하나 만두를 빚어나가는 것이,
    저 먼 누이나 오라비쯤 되어 안 보는 듯 나를 본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 또한 암말 않고 부어주는 오뎅국물을 마시며 나의 오랜 出이 여기서 끝나주었으면 하였고”

    만두집 여자와 시적 화자 ‘나’는 서로를 슬쩍슬쩍 보기만 할 뿐 아무 말이 없다.
    여자는 “둥글고 얇아진 만두피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꾹꾹 소를 눌러넣고”
    ‘나’는 그때마다 김밥을 하나씩 먹는다. 시는 이렇게 종결된다.
    “솥단지 안에 얌전히 들어앉은 만두꽃이 꿈인 듯 만개한지라,이마가 뜨거운 만두를 집어내고
    다시 새 만두를 올려놓으니,내가 그녀의 손안에서 빚어졌을 때
    다만 만두로서 순해져서는//가리라,저 화엄의 거리로 지금 난 익어가는 중이니”

    죽음을 목전에 두고 ‘익어가는 중’이라고 쓴 의미 전환 방식이야말로
    처연한 부활 의지 앞에 죽음의 무릎을 꿇게하는 득의의 경지가 아닐 수 없다.
    죽음은 최영숙의 몸을 관통해 시가 되었다. 삶은 때로 죽음에 의해 견인되기도 하는 것이다.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할머니에게 한끼 아침 식사를 차려준 시인은
    자신에게 ‘애기 엄마,복받으시우’라는 말을 남기고 간 할머니를 떠올리며 이렇게 읊조린다.
     
    “꽃 같은 시절,달랑 신랑 사진 한장 들고 찾아간 시집살이부터
    /씨앗 보고 집 나와 서울 공장으로 다시 시골로,
    /아들 낳아 지금은 며느리와 함께 산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마지막 식사’ 일부).
     
    이렇듯 시에 등장하는 것은 할머니 어머니 딸 며느리 수양어머니 아줌마 소녀로 호명할 수 있는 세상의 모든 여성이다.

    정철훈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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