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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포자(수학포기자)' 同病相憐, but...
    村 學 究 2022. 1. 1. 16:59

    새해 아침에 펼쳐든 신문에서 퍼뜩 눈에 들어오는 기사.
    이른바 수학천재에 관한 기사로, 미국 프린스턴大 수학과 허준이(39) 교수에 관한 글이다.
    이 기사가 나의 눈을 끌리게 한 것은 '수포자(수학포기자)'라는 기사 타이틀 때문이다.
    왜냐? 나도 '수포자'였으니까. 그것도 완벽하게 수학을 포기한 채로 지금껏 살아왔으니까.
    하지만 허 교수는 수포자였음에도 지금은 미 굴지 대학의 수학과 교수로, 
    수학의 천재로 불리고 있다. 
    그게 나를 정초부터 헷갈리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같은 수포자였음에도 허 교수와 나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인데,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같은 수포자일지언정 수포자들 마다에도 그레이드가 있다는 점이다.
    허 교수에 비해 나는 하위계층의 하급, 아니 하빨이랄까.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2/01/01/ASP3UHRZTBD3VC7XN3LGQCIS2A/?utm_source=facebook&utm_medium=share&utm_campaign=news&fbclid=IwAR3vJE6Fn2DAfrB_EDOw0BiYT5axE5JiA8Mu6gbGRVuiGfPt57ksPCQvmv8 

     

    ‘수포자’에서 ‘천재수학자’로… “인생도, 수학도 성급히 결론 내지 마세요”

    수포자에서 천재수학자로 인생도, 수학도 성급히 결론 내지 마세요 아무튼, 주말 김미리 기자의 1미리 50년 수학 난제 풀어 세계가 주목 美 프린스턴대 수학과 허준이 교수

    www.chosun.com


    국민학교 시절의 경우는 허 교수와 내가 그리 다르지는 않다. 
    허 교수도 수학(아니 그때는 산수)을 좋아했고 나도 그랬다.
    허 교수가 무너지기 시작한 건 고교진학을 앞두고 그랬던데 반해,
    나는 대학 입시를 앞두고 수학을 포기한 게 차이가 있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때 까지는 그런대로 남들 만큼은 수학을 했다. 물론 국민학교때부터
    상급학교로 올라가면서 수학에 흥미는 느끼질 못했고, 
    그러니 공부를 썩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그저 남들만큼 하면서 뭉갰다고나 할까.

    문제가 생긴 건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부터다. 그것도 3학년 2학기 대학입시를 앞두고다.
    나로서는 다른 과목 성적을 참작했을 때, 
    최소한 내가 바라는 대학을 갈 수 있다고 나름 자신하고 있었다.
    그런데, 3학년 2학기부터 수학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게 아니다 싶어 수학에 집중했다.
    그러나 수학 입시학원을 다니는 등 나름 노력을 기울였지만, 아무래도 때가 늦었던 것 같다.

    2학기 첫 모의고사가 있었다. 나는 수학시험을 딴에는 자신을 갖고 응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빵(0)점.' 나로서는 치욕의 점수였다. 
    물론 나 뿐만 아니라 그때 많이들 0점을 받았다. 그만큼 수학문제가 어려웠던 것이다. 
    학교에 다니면서 0점을 받아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던 나로서는 충격이 컸다. 
    하여 그 충격이 나로 하여금 수학을 포기하는 '수포자'로 만든 계기가 된다.

    학교 교무실 골마루 벽에 첫 모의고사 성적표를 붙여 놓았는데, 
    당연히 수학 0점자들의 명단도 포함돼 그야말로 중인환시리에 전시되고 있었다.
    그 길로 나는 집에 돌아 와 수학책을 몽땅 집 옥상에서 불태워 버렸다. 
    그리고 수학을 포기하고 그날 이후 수학 수업시간에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 결과가 어땠을까. 결국 수학이 선택과목인 대학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그게 또한 나의 향후 장래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지금도 나는 수학에 관해서는 아예 생각자체를 하지 않는다. 
    수학적인 응용이 우리 실생활에 많다는 걸 잘 안다. 시사적인 문제에도 수학적인 용어가 곧잘 등장한다. 나로서는 그에 의식적으로 아주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이런 나의 지금까지의 수포자의 처지와 허준이 교수와의 그것과는, 동기는 비슷한 측면이 있지만,
    엄청난 차이가 있다. 말하자면 허 교수는 수포자로서의 자신의 상황과 처지를 극복한 것이고
    나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는 차이다. 허 교수에 관한 기사를 읽어보면, 그런 점 등이 나에게는 바늘처럼 콕콕 찌르는 것 같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시적, 혹은 만성적인 핸디캡을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과 의지의 차원이 나하고는 전냥지차가 있다는 점이다.


    허준이 프린스턴大 수학과 교수
     


    또 하나 허 교수와의 차이점에서 느껴지는 건, 허 교수에게는 천재성이 분명 있다는 것이고, 
    나에게는 언감생신 그게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족을 포함한 주변환경의 영향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교수를 부모를 둔 허 교수는 아무래도 자라고 상급학교로 가면서 부모의 학구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라는 게 나하고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그런 처지들이지 않았던 내 부모를 탓하는 것 같아 송구스런 마음이 든다.
     
    그래서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자라 온 환경 등 주변환경을 무시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어떤 상황을 돌파하는 자신의 의지와 노력이라는 점에서 같은 수포자일지언정 나와 허 교수는 그 차이가 극명히 존재한다는 점을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로서는 좀 서글픈 동병상련(同病相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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