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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루걸러 술
    村 學 究 2019. 7. 20. 20:58

    몸이 좀 살만해서인가, 또 거의 하루 걸러 술이다. 술 마신 날을 표시해 놓는 카렌다에 7월들어 벌써 네번 째로 표시되어 있다. 붉은 펜으로 동그라미 표시를 하는데, 이 표시는 그러니까 좀 진하게 마신 날을 가리키는 것이다. 삼각표시도 가끔씩 하는데, 근자에 들어 이것은 빼 버렸다. 이는 그저 가볍게 한 잔한 날을 표시하는 것인데, 그런 날이 많기도 하거니와 보기에도 별로 좋지않아 빼 버린 것이다. 

     

    술을 한 동안 멀리한 것은 순전히 몸 때문이다. 작년 11월 경 허리를 다쳤고, 이어 12월 초에는 위장에 이상이 오는 바람에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그렇다고 전혀 마시지 않은 것은 아니다. 소주 등 좀 독한 술을 피했을 뿐 막걸리는 간혹 마셨다. 막걸리를 마시다 주기가 좀 발동해 소주를 마시면 뒤 탈이 따르는 탓에, 평소 좋아하는 소주는 멀리했었다. 

     

    속병이 좀 가라않기 시작한 것은 6월 말경이다. 그때부터 주종을 바꿔 슬슬 또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큰 이상은 없었다. 그러다보니 차츰 소주를 포함해 독한 술을 마시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그렇게 마시는데 물론 예전 같지는 않다. 빨리 취할 뿐더러 다음 날 상태도 예전과 달리 주기가 빨리 빠지지 않는 날이 많다.  

     

    어제는 중국술을 마셨다. 자그마치 도수가 53도 짜리다. 물론 다섯명이 한 병을 마셨기에 많이 마신 것은 아니다. 취기가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게 또 2차를 가는 빌미가 됐다. 결국 맥주집으로 가 소맥을 마셨다. 집으로 오는 전철 안에서는 말짱한 것 같았는데, 막상 집에 도착하니 주기가 좀 뻗혔다. 그 이틀 전에는 소주를 많이 마셨다. 나이어린 후배들과 권커니 받거니하면서 마셨는데, 내가 그들 후배를 따라갈 수가 없다. 후배들은 2차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전에 정신이 나풀거렸다. 결국 후배가 잡아다 준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다음 날 숙취가 오래갔다. 

     

    나의 이런 연속되는 술에 아내의 핀찬이 없을 수 없다. 아내는 이런 말이 입에 발렸다. 좀 살만하니 또 솔이예요? 아내는 내가 속병을 앓아 고생해 온 과정을 잘 안다. 집에는 한 반년 간 감자가 떨어지지 않았다. 지금도 집에 한 박스의 감자가 있다. 감자즙을 먹어야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감자가 떨어질만 하면 배달시켜주는 등 감자를 잘 챙겨다 주었다. 물론 병원 약을 먹기도 했지만, 아내는 감자즙이 내 속병을 다스리는데 역할을 했다고 믿고 있다. 이즈음도 감자즙을 먹는데, 매일 먹지는 않고 2-3일에 한번 정도 먹는다. 감자즙의 약효가 있을 것이지만, 그에 더해 감자즙은 심리적인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아내가 챙겨다 준다는 것도 그에 한몫을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오늘 아침에 아내는 소파에 길게 누워있는 나와 말을 섞지 않으려 했다. 집을 나서면서 딱 한 마디 던진다. 가지냉국 김치냉장고에 있어요. 나는 아침부터 가지냉국으로으로 쓰린 속을 달랬다. 오후들어서는 웬지 속이 허해지는 것 같아 라면도 끓여먹고 떡, 과일 등 냉장고에 있는 이런 저런 먹거리도 먹었으나 허기가 잘 가라않지 않았다. 저녁엔 밥을 끓여 먹을 생각이다. 

     

    이런 식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순전히 술 탓이라는 것을 잘 안다. 전날 술을 마시지 않았더라면, 오늘같은 토요일은 북한산이나 호수공원을 갔을 것이다. 그렇지 못한 게 술탓이니 술에 대한 원망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원망을 술에 들이댄다는 것이 얼마나 진부한 것인가를 내가 모를리가 있겠는가. 술은 나에게 있어서 이미 화석과 같은 존재다. 오래 된 술이라는 얘기다. 그러니 술의 잘잘못은 결국 나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며칠 후 또 술 약속이 잡혀있다. 친구들과의 정해진 월례모임이다. 장소를 내가 주선했다. 오늘 예약을 하려 그 집으로 몇 차례 전화를 했으나 전화가 안 된다. 밤중에라도 전화를 할 것이다. 그 술을 마시고 나는 또 나의 카렌다에 빨간 표시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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