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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사는 이야기 2010. 10. 17. 14:28

    일요일엔 새벽부터 마음이 좀 급해진다.

    시간 흘러가는 것, 그리고 보내는 게 아까워서다.

    아침무렵이면 더 그렇다.

    그렇다고 딱히 할 일이 있는 건 아니다.

     

    아침햇살이 넉넉한 거실에 그저 조용히 아무런 생각없이 앉아 있어도 좋다.

    텔레비전도 본다. 일요일 아침에 방송되는 '진품명품'이 분위기에 알맞다.

    책도 본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그저께 일산 아람누리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이다.

    음악도 듣는다.

    아이튠(iTune)에서 다운 받아놓은 네덜란드 클래식방송(Classic FM NL)의 톱 오페라 100곡선.

    이 일들을 한꺼번에 할 수는 없는 것인가.

    뭔가를 하나하나씩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지만, 마음이 급해져서인지 허둥대기만 한다.

    '진품명품'이 끝났다. 일단 텔리비전은 끈다.

    두 가지 일을 해야한다.

    문득 생각나는 게 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보는 풍경.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뭔가를 들으며 눈으로는 책을 보는 젊은 청춘의 사람들.

    이해가 잘 안 됐다. 책이 머리에 들어올 것인가.

    아니면 들리는 게 무엇이든 간에 이해가 잘 될 것인가.

    그러나 막상 그런 상황에 처하니 별 수가 없다. 나도 한번 해보자.

    젊은이들 하는 짓, 이상하다 생각하지만 말고 한번 따라 해보자.

     

    아이팻 이어폰을 귀에 꽂고 책을 펼쳐 들었다.

    오페라 아리아의 감미로운 음악이 귀에 감친다.

    아, 책을 덮어버리자. 눈을 감고 듣자.

    그러나 문득 들어오는 책 표지의 사진.

    파블로 네루다가 자신의 집인 '이슬라 네그라'에서 바다를 바라다보고 있다.

    나도 모르게 생각의 어느 한 부분이 책으로 옮겨진다.

    서문을 보고, 에필로그를 보고, 역자의 작품해설을 보고.

    그러다가 점점 책에 빠져든다. 오페라 아리아는 계속 귀 속을 감돌고.

    신기했다. 듣고 보는 두 일이 별 어려움 없이 느껴져 오는 것이다.

    혼란스러울 것이라는 애초의 조바심이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었다. 

    마리오가 네루다의 메타포를 이해하면서 비로소

    시(詩)에 눈뜨기 시작하는 그런 기분이랄까, 좀 묘했다.

    그러면서 문득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가 궁금했다.

    한 시간 여가 흘렀다.

    음악과 책을 함께 듣고 보면서 한 시간 여을 보낸 것이다.

    음악을 실내에 틀어놓고 책을 보기는 했지만,

    이어폰 음악을 들으며 책을 본 것은 처음이지만, 별 부담감 없이 소화해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책의 내용을 완전히 요해했다든가,

    오페라 아리아를 들으며, 그 내용에 침잠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듣고 보기에 별 무리와 부담은 없었다.

    그런대로 잘 받아지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뭘까를 생각해 본다.

    음악과 책의 분위기가 어울리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그랬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네루다와 우편배달부 간 얘기를 다룬 '일 포스티노'가 원작이 이 책이다.

    책 보다 영화가 먼저 나왔다. 영화를 두어 번 봤으니 그 내용은 물론 잘 안다.

    영화의 음악도 좋아한다.

    영화 속 검푸른 태평양 바다를 떠올리면 그 음악이 가슴에 철렁거린다.

    그리고 네루다의 아름다운 시와 아름다운 감성의 마리오.

    그 게 오페라 아리아와 매치가 됐을 것이다.

    그래서 머리에 쏙쏙 들어왔을 것이고.

     

    주관적이겠지만, 음악과 책의 분위기가 다르면 어떨까.

    그래도 잘 받아들여질까는 의문이다.

    다음에 한번 해보기는 하겠지만,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이어폰 귀에 꽂고 책 보기.

    어쨌든 오늘의 시도는 젊은 청춘들로부터 배운 것이다.

    시답지 않게 보였던 게 나에게는 결국 좋은 경험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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