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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사가 많은 계절이다.
지난 토요일엔 4건이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는 사람들의 혼사에 잘 가지 않는 편이다.
변명이 없을 수 없겠지만, 내가 생각해도 구구하고 구차하다.
이미 그런 쪽으로 '낙인'도 찍혔다.
그런데 이런 일이 생겼다.
중학교 동창 혼사가 얼마 전에 있었다.
토요일, 산에 가느라 '당연히' 가질 않았다.
누구는 청첩장 안 받았으면 안가도 된다고 하는데,
나는 그 것 보다는 오히려 산에 가는 핑계가 훨씬 떳떳하다는 생각이다.
그 동창의 혼사가 있고 며칠 후, 전화가 왔다. 그 동창이다.
못 가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려는데, 그 쪽에서 먼저 '고맙다'는 말이 나왔다.
무슨 말인가. 그 게 아니라고 말하려는데 또 먼저 말을 한다.
연신 고맙다, 고맙다고 한다. 무엇이 그리 고마운가.
들어봤더니,
내 이름 명의로 큰 화환이 오고 또 거시기도 두툼했다는 것이다.
가만이 듣기가 참 거북해졌다.
이실직고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나는 가질 않았는데, 무신 소리고?
그랬더니 그 동창이 또 무신 소리고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를 했다.
나는 못 갔다. 그날 그렇고 그래서 못갔다. 다시 한번 확인해봐라.
그 동창은 그래도 우긴다.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니냐는 것.
안 간 것은 안 간 것이다. 그 게 팩트인데, 그 걸 갖고 실랑이를 벌인 것이다.
결국 둘다 머슥하게 전화를 끊었다.
나는 아직도 영문을 모르고 있다.
비슷한 경우로 이런 일도 있었다.
어떤 친구가 딸이 취직을 해야하는데, 한 소리 해달라는 부탁을 해 왔다.
들어보니 나와는 한 다리 건너 부탁해야 하는 취직건이다.
서류전형과 1, 2차 면접을 다 끝냈다. 3차 면접만 남았다.
그래서 누구 누구에게 얘기하면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거절할 수가 없다. 알았다. 한번 얘기해 보겠다.
그러고는 그 걸 차일피일 미뤘다. 솔직히 말해 얘기하기도 좀 꺼려지고.
그리고 몇날이 흘렀다. 그 친구로부터의 전화.
고맙다, 고맙다. 또 연신 고맙다이다.
딸이 합격했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딸의 합격이 내가 부탁을 해서 된 것인줄 알고 전화를 한 것이다.
참 난처해졌다. 무슨 얘기를 해야 하나.
부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얘기해야 하는데,
그러려니 무슨 다 된 밥에 초치는 것 같고,
아니라고 그러려니 그 또한 거시기 하고.
그냥 허허 거리며 얼머부리고 말았다.
너거 딸, 열심히 해라 캐라이.
이 말 한마디는 했다.
어차피 잘 되고 좋은 일이라 사실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좀 미안했다.
안 그래놓고 그런 척 하는 것,
혹은 그래놓고 안 그런 척 하는 것,
이 모두 시치미에 속한다.
나의 경우 어떤 시치미가 필요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