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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누라의 '연평도'
    세상사는 이야기 2010. 11. 29. 19:20

    우리 마누라는 세상 돌아가는 일,

    좀 더 좁혀서 시국상황 등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어쩌다 한번씩 코멘트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걸로 보면 좌파들이 비아냥거리며 부르는,

    이른바 보수골통은 아니더라도 나와는 성향이 비슷한 것 같습니다.

    뭐랄까요 보수현실론자라고나 할까요.

    보수는 보수인데, 이념적으로 그악스럽지 않으면서

    먹고 살고 생각하는 방식이 보수적이지요.

    한마디로 나랏 말 잘 듣고 따르는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마누라입니다.

     

    연평도에 북한의 포탄이 떨어지던 날,

    마누라는 일을 나갔고 나는 하루 종일 집에 있었습니다.

    텔리비전으로 사태를 지켜보고 있자니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을 해야 하나.

    급기야 전투기 출격소식이 전해졌을 땐,

    뭔가 결단이 날 것 같은 생각에 불안이 엄습했습니다.

    나가있는 아이들과 마누라 생각이 났습니다.

    그러나 나의 이런 불안과는,

    달리 마누라로부터는 전화 한 통 없었습니다.

    과연 마누라답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녁에 들어와서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기에

    둘이서 별다른 말을 나누지도 않았습니다.

    서로 말을 않고, 말을 나누지 않는다는 것,

    이게 어떤 의미로는 불안감의 표현일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해서 몇 날이 흘러 갔습니다.

    긴장감의 연속,

    그러나 일상은 그런대로 태연들했던 날들이었지요.

    그저께 아침이었습니다.

    아침 밥을 준비하던 마누라가 조용하게 말했습니다.

     

    쌀이 다 떨어져 간다.

    쌀을 좀 사놔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라면도...

     

    무슨 소린가 싶어, 쌀 봉지를 봤더니 밑바닥이 보였습니다.

    그래도 몇끼는 먹을 수 있을 것 같아 대수롭지 않게

    흘겨봤더니, 마누라가 대수롭지 않게 한마디 합니다.

     

    수퍼마켓에 가니까 남들은 전쟁난다고 난린데,

    우리는 먹을 쌀도 모자라니, 어휴...

     

    그날 오후, 동네 수퍼마켓에 가서 뭘 좀 샀습니다.

    그래봤자 번들 라면 2봉과 빵 몇 개, 그리고 반찬거리 등.

    그러나 쌀은 사질 않았습니다.

    저녁에 들어 온 마누라는 이것 저것 들쳐보더니,

    빵 산 것에 대해 타박을 합니다. 웬 빵은, 아이도 아니고...

    그래도 마누라는 얼마 안되지만 사다놓은 먹거리에 만족하는 것 같습니다.

    말도 안 되지요. 그 게 얼마나 마누라를 안도케 했겠습니까.

    마누라라고 왜 불안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마누라는 잘 참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연평도가 위태로우면 나라도 위태롭습니다.

    나라가 어렵고 어지러울 때,

    그 위기를 극복해낼 수 있는 것은 국민들의 힘입니다.

    대한민국의 연평도는, 곧 마누라의 연평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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