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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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안윤봉(安允奉) 선생추억 속으로 2022. 3. 19. 11:07
오늘(3. 19)짜 종이신문 중앙일보, 황인 후배가 쓴 ‘예술가의 한끼’ 이병주 선생 편 글이 옛 추억을 소환하고 있다. 마산의 안윤봉 선생이 나오고, 월남다리 아래 ‘화신순대국’도 나온다. 또 ‘외교구락부’도 나오고 샹하이 박도 나온다. 이 모두들 과거에 나와 직간접적으로 엮여져 있는 파편같은 소재들이다. ‘화신순대국’ 집은 1977년 초 마산에 6개월 가량 있을 적에 우리들의 일종의 아지트였다. 곱상하신 아주머니는 천사 같았다. 3만원 견습기자 박봉이지만, 그 쥐꼬리 돈이 그 집에서는 은이 났다. 돈 걱정 말고 드세요. 아주머니의 입에 달린 게 이 말이었다. 아주머니는 안윤봉 선생의 제자였다. 안 선생을 모시고 많이 갔다. 거기서 이병주 선생도 만나고 소프라노 이규도 선생 등도 만났다. 그 집은 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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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3.15의거' 기념일에 생각나는 사람추억 속으로 2022. 3. 15. 13:25
오늘 3월 15일은 자유당 이승만정권의 부정선거에 분연히 떨쳐나섰던, 마산의 '3.15의거' 6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마산이 고향인 제가 국민학교 3학년 때 일어났고, 어린 마음에도 분통이 터져 시위대와 함께 마산거리를 누벼봤기 때문에 저는 그 때의 기억이 아조 뚜렷합니다. 자유당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계기가 된 중대한 사변이었던 만큼 '3.15의거'는 마산 뿐 아니라 전 국민 모두가 기려야 할 기념일입니다. 아울러 저는 마산사람으로서 '3.15의거'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3.15의거'는 개인적이고 사사로운 측면에서 어떤 한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저의 어렸을 적의 추억의 한 토막이기도 합니다. 마산의 '3.15의거', 이 격랑의 사건을 나는 어릴 때 겪었다. 자유당 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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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故人에 대한 한 추억추억 속으로 2022. 3. 14. 10:24
1976년 나의 대학졸업 논문이 북한언론에 관한 것이다. 우리 때부터 졸업논문제가 실시돼 논문 통과없이는 졸업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북한에 관한 논문을 쓴 것은 일종의 편법이다. 다른 사람이 별로 손 대지 않은 영역, 그러니까 지도교수 조차도 잘 모르는 분야의 것을 쓰면 쉽게 통과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 때는 북한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전공자가 별로 없던 시기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북한의 언론에 관한 논문을 썼고, 희귀했던 탓인지 내 논문은 우수논문으로 채택돼 과 학회지에 게재되기도 했다. 이게 계기가 돼 졸업 후 일자리도 그 쪽이었고, 그래서 어린 나이에 북한을 연구하는 연구자들도 더러 많이 알게됐다. 지금은 다들 고인이 되신 김창순, 김남식, 조덕송, 이기봉 씨를 비롯해 김준엽, 양흥모,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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追憶의 옛 물건들추억 속으로 2022. 3. 6. 12:32
옛 물건들. 무얼 어떻게 하려 그랬는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나무상자에 나름 잘 보관해 두고있던 것들인데, 오늘 우연히도 내 눈에 발견됐다. 저런 물건들 한 두어개 없는 집들이 없을 것이라 괜히 궁상 떠는 일일 수도 있는데, 그래도 어쨌든 기억을 더듬어 그 내역을 한번 반추해 본다. 목각 두꺼비는 60여년 전 외사촌누이가 내게 준 선물이다. 그 때 누이는 창녕 계성국민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나는 입학 전이었다. 누이가 외지에 소풍 갔다왔다면서 마산 오는 길에 나에게 이 두꺼비를 건넸다. 누이는 외삼촌이 이혼하시는 바람에 아주 어릴적 부터 계모 슬하에서 자랐다. 나는 그게 어린 마음에도 늘 누이가 불쌍하게 보여 나름 잘 챙겼고, 그래서 누이와 나는 사이가 좋았다. 누이와는 그동안 못보고 지내다 작년 9월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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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데코 풍 아날로그 '나쇼날 오븐(oven)' circa 1980s추억 속으로 2021. 10. 14. 13:49
1980년대 아날로그 식 오븐. 일견 좀 둔탁하고 단순해 보이지만, 그래도 당시로는 첨단인 기계식 타이머가 부착된 만능 조리기였다. 저걸 꺼내놓고 보니 저 안에서 재잘거림이 들린다. 80년대 초 과천 살 적에 큰애, 작은 애 할 것없이 저 오븐으로 아내가 많은 걸 해 먹였고, "땡!" 하며 요리가 다 됐다는 시그널을 보내면 아이들이 손벽을 치곤 했다. 나는 그때 한창 인기를 끌던 피짜 맛에 끌려, 아내가 저것으로 피짜토스트를 많이 만들어 주었다. 어제 주방 정리를 하다 저게 나왔다. 아내는 낡고 오래된 것이니 버리자 했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애착이 갔다. 그 이유는 물론 있다. 저 오븐은 불가피한 사정으로 당시 일본에 체류하고 계셨던 어머니가 일시 귀국하면서 사들고 오셨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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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景畵'로 남아가는 秋夕추억 속으로 2021. 9. 20. 10:03
"생선 부쳤다. 조구와 민어는 좀 넉넉하게 넣었다. 제사 전이라도 좀 찌지고 끼리 무라. 그라고 돔배기 그 거는 함부로 손대지 마라. 내가 올라가서 하마." 나에게 추석은 언제나 멀리 마산으로부터 왔다. 추석 한 일주일 전 쯤 마산 어머니로부터 생선 부쳤다는 전화가 그랬다. 일종의 시그널이었다. 지금은 물론 없다. 추석의 까마득한 한 기억일 뿐이다. 덧붙인다면, 추석은 이제 나에겐 하나의 그림으로 남아가고 있다. 기억에 붙박이 처럼 붙어있는 일종의 정물화 같은 풍경의 그림이다. 냉장고 옆, 기대 앉을 수 있는 너른 벽 한켠에 어머니가 앉으셨다. 그 맞은 편은 제수 씨다. 그 옆으로 여동생들이 앉았다. 아내는 딱히 정해진 자리가 없이 부엌에서 왔다갔다 한다. 추석 전날 오손도손 가족들이 모여않아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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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국 한 그릇 - 반세기 만에 만난 옛 군대선배추억 속으로 2021. 9. 5. 13:30
"순대국이나 한 그릇 얻어 먹겠습니다." 48년 만에 만난 옛 군대 선배가 통화 마무리에서 한 말이다. 거의 반세기 전 어느 날 우리들은 문산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 양반은 연대인사과 호송병, 나는 전출병. 우리들은 그 날 아침 일찍 임진강을 건너 파주 광탄 사단사령부로 가고 있었다. 나를 그곳에 인계하기 위한 것이다. 문산 버스차부에서 그 양반이 나를 근처 순대국 집으로 데려갔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 또한 인연이니 순대국 한 그릇으로 마무리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사령부에 인계한 뒤 헤어졌다. 그 양반과 무려 48년 만에 어제 통화가 이뤄진 것이다. 만나게 된 사연은 이렇다. 나로서는 그 양반 생각이 많이 났다. 이름이 독특했고, 어쨌든 나를 DMZ에서 임진강 건너 후방으로 데려온 사람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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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의 신림 땅 '용소막 성당'추억 속으로 2021. 6. 27. 07:18
원주 신림의 용소막 성당. 2011년 와 봤으니까 10년 만의 발길이다. 오기가 쉽지 않았다. 중앙선 신림 역이 폐쇄된 탓이다. 고양에서 버스를 타고 원주터미널에 내려서도 두 번 버스를 갈아타고 도착할 수 있었다. 금대리, 치악재 등 원주에서 용소막 성당 가는 길, 풍광은 예전 그대로인데도, 예전에 가던 그 맛이 나질 않았다. 아무래도 연륜과 나이 탓일 것이다. 1980년대 초, 여기를 자주 왔었다. 장모님의 몸이 안 좋았다. 장인 어른이 어디 요양할 데를 구하다가 찾은 곳이 신림 땅이다. 그곳의 한 농가를 세로 구입했다. 윗채와 아랫채가 있는 자그마한 시골 촌집이었다. 윗채를 쓰고 아랫채는 집을 관리할 젊은 부부가 살았다. 장인께서 신림을 요양처로 구한 것은 장모님의 생각을 반영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