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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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趣向의 텔레풍켄(Telefunken)을 찾아서추억 속으로 2020. 12. 21. 10:16
새벽잠을 설치다 그냥 털고 일어나 어둠 속에 맹숭하게 앉아있었다. 그러다가 웬일인지 음악이나 좀 듣자며 복잡한 앰프를 만지작거리는데, 문득 그게 생각났다. 텔레풍켄 카셋 플레이어. 라디오를 겸한 카셋 플레이어인데, 1970년대에 출시된, 그러니까 말하자면 빈티지 플레이어다.(Telefunken Magnetophon Party Sound R201) 이걸 4년 전인가 이베이(eBay)에서 체코의 한 여인에게서 구입했다. 쌩쌩하고 가벼운 이즈음의 디지털 음향에 식상해 있던 터에 코맹맹이풍의 옛 모노 소리가 그리워져 구한 것이다. 한 동안 정말 끼고 살다시피하며 들었다. 집에 있는 낡아빠진 카셋 테이프는 있는대로 다 꺼내 들었다. 모짤트도 있고, 비틀즈도 있고, 나훈아도 있고, 크리스 크리스토퍼슨도 있고,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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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극장>에서 짚어보는 파주 광탄 땅의 옛 추억추억 속으로 2020. 11. 24. 11:39
우연히 접하게 된 한 권의 책에서 시간여행을 하게 됐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교 교수가 쓴 이라는 책이다. '막이 내리고 비로소 시작되는 아버지, 어머니의 인생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부제의 말 맞다나 노 교수 아버지, 어머니의 인생 전반을 그의 전공인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사회현상과 변화를 곁들여 담담하게 써내려 가고있는 한 편의 드라마같은 이야기 책이다. 이 책은 그런 한편으로 나에게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시간여행을 하게 한다. 노 교수의 고향은 경기도 파주 광탄 땅이다.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의 옛 시절은 부모들의 생활현장과 맞닿아 있다. 그의 부모들은 주한미군들이 주둔하는 그곳 기지촌에서 미군들을 상대로 한 클럽을 생활수단으로 하면서 노 교수를 길렀다. 그러니 이 책의 상당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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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中의 여인'추억 속으로 2020. 10. 13. 13:38
어릴 적부터 유행가를 많이 듣고 자랐다. 아버지가 노래를 참 좋아하셨다. 1960년대 초반 당시로는 귀한 제니스 전축이 집에 있었다. 아버지는 서성동 주차장에서 퇴근해 집에 오시면 그 전축을 거의 끼고 살다시피 했다. 심연옥의 ‘한강’을 참 좋아하셨고 그 밖에 한정무의 '꿈에 본 내 고향' 등 향수를 주제로 한 노래들을 많이 들으셨기 때문에 내 귀에도 이런 노래들은 지금껏 아주 익숙하다. 그 당시는 동네마다 ‘노래자랑 대회’가 많이 열렸다. 중학교에 다니던 지산동 살 적에는 무학국민학교에서 많이 열렸다. 그 학교 뒷문이 우리 집에서 멀지 않았기에 자주 보러갔었다. 어느 날인 가에 열린 노래자랑 대회에 우리 동네 살던 학춘이라는 얘가 나왔다. 또래 동네 동무들 누구도 예상 못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대중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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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雨中산행'은 무섭다추억 속으로 2020. 8. 23. 21:06
비오고 번개치는 날, 북한산은 무섭다. 아래 기사를 보니 내가 당한 사고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2007년 이맘때 나도 비슷한 경우를 한번 당한 것이다. 그즈음에 의상능선 상의 용출봉에 낙뢰가 떨어져 몇명이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가 난 다음 날에도 비는 계속 내렸고, 나는 어떤 호기심에서였는지 그 우중의 날씨에 의상능선에 올라 용출봉 쪽으로 가고있었다. 그때 "꽝!"하고 번개가 쳤다. 용출붕의 쇠다리에 뭔가 번쩍 빛이 났다. 엉겁결에 나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가 땅바닥에 바짝 업드렸다. 한참을 그대로 있었는데, 그때의 공포심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천둥소리가 좀 잠잠해지자 나는 오던 산길을 되돌아 혼쭐나게 내려왔는데, 백화사 입구까지 오는데도 억수같은 비 속에 천둥번개가 요란했다. 그리고 그 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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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그리고 나'라는 드라마추억 속으로 2020. 8. 9. 13:00
장마비 속에 집에 만 있으려니 사람이 궁상맞아 진다. 모 텔레비전 채널에서 재방해 주는 어떤 드라마를 우연히 보다가 궁상맞게 그 때 그 시절이 좋았다며 옛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대 그리고 나'라는 드라마인데, 1997년 10월 경의 것이다. 그 때 재미있게 봤던 기억과 그에 겹쳐지는 추억이 범벅이 돼 나도 모르게 몰입해 보았다. 저 드라마가 방영되던 시절, 나는 부산 본사에서 소위 '뺑이'를 치고 있었다. 저 해 12월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친여지역 신문의 정치부장이라는 자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걸치고 처세하기에 나 스스로 너무 부담스럽고 소위 쪽이 팔리면서 한편으로 쪽을 챙겨야 하는 처지다. 내 생각과 행동이 따로 놀던 시절이기도 하다. 그래도 매일 신문은 만들어야 하고, 윗 사람하고 맞짱 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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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1990추억 속으로 2020. 7. 7. 11:07
사진 액자 뒤에 쓰여진 글귀의 날짜로 보아, 1990년 4월 29일 가야산 정상을 앞에 둔 새벽 여명 무렵에 찍은 사진이다. 가물한 기억을 되짚어 본다. 1990년 4월 무렵이면, 다니던 통신사 사장과의 불화로 퇴사를 고민하던 때다. 그 해 6월 신문사로 갔으니, 4월이면 회사에 사직을 통보하고 나가지 않으면서 일종의 사보타주를 하고있을 때인데, 그 무렵 홀로 훌쩍 떠나 가야산으로 올랐던 것이다. 가야산을 왜 갔을까. 뚜렷한 기억은 없지만, 아마 아버지가 그리워 올랐을 것이다. 아버지와 가야산을 함께 올랐던 게 1975년이다. 그 때 해인사 인근에서 하룻밤을 묵고 새벽에 아버지와 함께 오르던 가야산이다. 문득 아버지가 생각났고 가야산이 겹쳐지면서 그냥 밤차를 달려 해인사에 도착해 아버지와 갔던 그 코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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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시절의 한 여름, 어떤 '도식(盜食)'의 추억추억 속으로 2020. 6. 26. 21:42
송악 OP에서의 군 시절, 나는 식사배달 병이었다. 그러니까 아침, 점심, 저녁 세 끼의 OP 중대본부 식사를, OP 산 아래 화기소대 식당에서 마련해주는 것을 배달해오는 역할이었다. 매끼 식사 배달은 간단하다. 지게에다 바케스 두 개를 매달아, 한 쪽은 밥, 또 한 쪽은 국을 넣어 짊어지고 오는 것이었다. 김치 등 부식 몇 가지는 사흘에 한 번꼴로 갖고 와 중대본부에 보관해놓고 먹었다. OP에서 화기소대를 오가는 길은 산길이다. 거리로는 한 7, 8백 미터쯤 되는데, 오르락 내리락하는 길이다. 그 산길을 20여 명 분의 밥과 국이 든 지게를 매고 매일 오르내리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여름철 무더운 날씨엔 한 번 오르내리면 녹초가 된다. 요령삼아 중간에 좀 오래 쉬기라도 하는 낌새가 보이면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