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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장마비, 장미꽃, 마리아세상사는 이야기 2020. 8. 3. 11:12
새벽 산책길을 나섰다가 흠뻑 비를 맞았다. 비가 좀 잠잠해진 것 같아 나선 길인데, 얼마 못 가 물 속에 뛰어든 생쥐 꼴이 됐다. 우산으로도 도저히 비를 피할 수가 없어 피해 들어간 곳은 화원이다. 장미꽃 화원이다. 꽃들은 올케 피지도 않고 비 속에 웅크린 모습들이다. 꽃들을 보고, 비내리는 대장천을 보고, 또 꽃들을 보고 대장천을 보고. 그러기를 20여 분. 안 되겠다 싶어 그냥 비를 맞고 집으로 왔다. 묵주기도를 바치며 걷는 새벽 산책길에 비를 만났고, 또 장미꽃을 만났다. '장미 속의 마리아(La Madonne aux roses)' 그림이 떠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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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실내(Summer Interior)'컬 렉 션 2020. 8. 2. 09:48
'여름 실내(Summer Interior)'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의 1909년 작품(Oil on Canvas).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가린 젊은 여자가 침대에 털썩 주저앉은 채 바닥에 앉아 있다. 그녀는 흰 민소매 셔츠만 입은 채 성기 부위는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그녀의 왼팔은 다리 사이로 아래로 뻗어있다. 그녀의 음부 부위를 강조하는 듯이 보인다. 그녀의 오른팔은 팔꿈치에 구부러져 있고, 그녀가 기대어 서 있는 침대 위에 놓여 있다. 침대 외에 인물의 방은 가구가 거의 갖춰지지 않았다. 하얀 벽난로가 거의 전적으로 침대에 가려져 있다. 오른쪽으로 난 창문 하나에서 햇볕이 비춰지고 있다. 이 패치는 그림의 유일한 광원이지만, 한편으로 시트의 흰색과 여자의 흰 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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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장의 사진時事 터치 2020. 7. 31. 12:29
한 장의 보도사진이 갖는 힘은 다가올 어떤 상황을 암시해주는 예시성이다. 사진이 담고 있는 현시적인 상황이 주는 메시지도 물론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이와함께 사진 이면에 도사린 그 무엇인가를 함축적으로 예시해주는 느낌을 안기는데, 그것은 대개 상황과 맞물린 불길한 예감들이다. 아래 사진은 어떤가. 문재인이 신임들인 박지원 국정원장과 이인영 통일부장관, 김창룡 경찰청장에게 신임장을 주는 장면을 담은 사진이다. 우선 문재인의 자세가 올바르지 않다.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로 엉거주춤하면서 박지원에게 악수를 청하고 있는 모습이다. 의전사진이 저래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그냥 릴리즈됐다. 뒤뚱거리는 문재인의 모습은 뭐 하나 제대로 된 것 하나없이 뒤죽박죽인 현 문재인 정권의 실상을 보여주는 것 같다. 악수를 받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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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다 또 개이고(乍晴乍雨)세상사는 이야기 2020. 7. 31. 09:14
한 며칠 간 장마비가 쏟아지더니만, 오늘은 쾌청한 날씨다. 장마철이 원래 그렇지만, 어제 어두컴컴한 방 창가에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뭔지 모를 시름에 젖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 밝은 햇살 속 뭔가 모를 희망으로 하루를 시작하고자 하고 있으려니, 날씨도 그렇고 사람의 마음도 그렇고 종잡을 수가 없다. 달리 갖다 붙일 생각의 여지조차가 없는 아침, 그저 무탈한 하루를 바랄 뿐이다. 매월당 김시습은 일기의 이런 변화를 세상과 인간에 빗대 "구름 가고 구름 옴을 산은 다투지 않도다(雲去雲來山不爭)"며, 그러니 어디서든 즐거운 마음을 가지라고 권하고 있는데, 매월당 김 선생의 그 글귀가 담겨있는 '사청사우(乍晴乍雨)'라는 시가 문득 떠올려지는 아침이다. 乍晴乍雨雨還晴(사청사우우환청) 잠깐 갰다 잠깐 비 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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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호퍼의 '푸른 저녁(Soir Bleu)'(1914)컬 렉 션 2020. 7. 29. 08:43
'푸른 저녁(Soir Bleu)' 미국 뉴욕 출신의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1914년 작품(Oil on Canvas). 프랑스 파리의 어느 카페에 앉아들 있는 각기 다른 존재들의 모습과 표정들을 그린 그림입니다. 짙은 화장의 매춘부, 하얀 분장을 한 광대, 군복 차림의 군인, 긴 수염에 담배를 입에 문 보헤미안, 그리고 도도한 모습으로 어떤 교감에도 인색해 보이는 귀족 등입니다. 이들은 같은 카페에 앉았지만, 대화는 없습니다. 각자들의 생각에 몰두하면서 서로간의 교감을 멀리하고 있는 모습들입니다. 호퍼는 이 그림을 통해 같은 존재인 인간들 끼리지만, 그 속에서 서로 이질감을 느끼는 고독한 존재로서의 인간 군상을 나타내려 한 것 같습니다. 이 그림은 그림의 제목이 호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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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울, 서울볼 거 리 2020. 7. 26. 14:25
어제 토요일은 많은 비가 온 후라 그런지 대기가 청명했다. 서울의 심장 격인 북한산에서 그걸 실감할 수 있었다. 탕춘대성 암문 위 바위에 앉아 땀을 식히는데, 은평구 쪽 풍경이 확 눈에 들어왔다. 에머랄드 빛 하늘과 하얀 구름, 그리고 그 아래 살포시 내려앉은 듯한 서울을 담은 풍경은 한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그 풍경에 젖어 한참을 앉아 쉬었다. 친구들과 합류해 은평구 쪽 둘렛길을 걸었다. '북한산자락길' 어느 지점에서 내려가는데,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풍경이 또 눈 앞에 펼쳐진다. 안산과 인왕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다. 맑고 청명한 대기 속에 기묘한 형상의 구름이 펼쳐진 하늘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모두들 그 풍경에 취해 한참을 서서 보았다. 서울을 삶 터로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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冊에 대한 단상 하나村 學 究 2020. 7. 25. 06:29
지인으로부터 받은 책을 읽지않고 그냥 방치해 두는 경우가 많다. 그럴려고 그러기야 하겠는가. 깜빡하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받았던 책이 눈에 들어오면 책을 준 지인에게 송구스럽기 짝이 없다. 이 경우 말고 역시 얼마 간의 세월이 지난 후 책을 준 지인과의 대화에서 나에게 준 책이 언급될 때가 있다. 기억나는 책일 수도 있고 없는 책일 수도 있다. 기억나지 않는 책이면 진땀을 뺀다. 대충 얼머부리며 화제를 다른 곳으로 유도해 넘어가 버린다. 기억에 있는 책도 대충 표지 정도만 훑어 봤던가 아예 읽지않은 것도 더러 있다. 이런 경우도 난감하기는 매일반이다. 그냥 대충대충 넘어가려 애를 쓴다. 그저께 모처럼 전화를 걸어온 한 후배와도 그랬다. 이런 저런 얘기 끝에 후배가 자기가 쓴 책 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