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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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의 '農場'세상사는 이야기 2021. 5. 8. 06:55
과장이 좀 귀엽게 심한, 평촌 사는 한 후배가 있다. 이 후배의 '과장' 가운데 한 토막은 농장에 관한 것이다. 걸핏하면 "내 농장, 내 농장"하고 "농사, 농사" 운운 한다. 누가 들으면 어디 시골에다 농장이나 마련해 놓고 대단한 농사나 짓고 사는 줄 안다. 나도 처음엔 그런 줄 알았다. 나름 꽤 실속있게 사는 후배이기 때문이다. 하도 그러길래 한번 따라 가 보았다. 청계산 아래에 있다고 해서, 청계산 산행을 겸했다. 산행을 끝내고 '농장'으로 가자고 해서, 드디어 그곳으로 가는 줄 알았다. 청계사 아래 풍광 좋은 계곡 아래로 이끌고 가기에 내심 기대가 컸다. 도로 옆에서 조금 들어갔더니 널찍한 들판이 나왔다. 그게 나는 후배의 농장인 줄 알았다. 지난 4월 주말농장에서 감자를 심는다고 포즈를 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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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7일 북한산 산행세상사는 이야기 2021. 4. 18. 10:34
코로나로 동창회 등 모임이 사라지다시피한 게 거의 일상화 됐다. 내 주변에 그래도 하나 살아 움직이는 게 있다. 중.고등학교 등산 모임인 '북한산 포럼.' 모임 이름에 북한산이 들어가는 건 주로 북한산 만 다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북한산 만 가는 건 아니다. 지리산 종주도 거의 10년 째 이어오고 있다. 대피소가 개방되면 지리산엘 갈 것이라고 서로들 다짐을 하고있는데, 돌아가는 형국으로 보아 당분간은 쉽지않을 것 같다. 토요일 어제 산행엔 모두 9명이 나왔다. 많이 나온 셈이다. 지난 주에 빠졌던 하삼주 교수와 내 대부되는 윤철원 친구도 모처럼 나왔다. 나는 불광동에서 올라 탕춘대 암문에서 친구들과 합류했다. 다른 친구들보다 많이 걸은 셈이다. 재잘거리며들 사모바위 쪽으로 오르는데, 몇몇들이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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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漢山 진달래, 탕춘대 성세상사는 이야기 2021. 3. 21. 10:26
어제 비 오는 날, 호젓한 북한산 산행. 진달래가 비 속에서 나를 반긴다. 머얼리 족두리봉은 비구름에 휩쌓였다. 그래서인지 진달래가 유독 화사하다. 문득 신동엽 시인이 생각난다.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화사한 그의 꽃/山(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비 내리는 북한산에서 진달래를 보며 신동엽의 이 시 구절이 왜 떠올려졌는지 모르겠다. 신동엽 시인의 북한산 진달래를 생각하며 한참을 걸었다. 회상의 북한산 진달래가 된 셈이다. 불광동에서 올라 산길을 걸어 닿은 곳은 탕춘대 암문. 친구들과 합류하는 지점이다. 항상 그러하지만, 탕춘대 성과 그 아래 암문에서 떠올려지는 인물은 연산군이다. 봄을 얼마나 질펀하게 즐겼으면 '蕩春'이라고 했을까. 그런 연산군을 생각하면 인생무상이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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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卽發佛心'세상사는 이야기 2021. 2. 28. 10:17
모처럼 대구 간 김에 팔공산에 올라 갓바위 부처 앞에 섰다. 나이들어는 처음이다. 아주 어릴 적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 팔공산에 오른 기억이 있는데, 외할머니의 불심으로 미루어 나도 그 때 갓바위 부처 께 분명 불공을 드렸을 것이다. 그런 기억을 되살려 팔공산 갓바위 부처의 얼굴을 대하니 참 묘하다 싶다. 수 없이 봐온 부처상의 얼굴과는 형상 및 느낌이 좀 다르게 다가온다. 자비감이 깃든, 한 없이 인자한 얼굴이 기존에 봐 왔던 부처상의 얼굴이다. 그런데 팔공산 갓바위 부처 얼굴은 그들과 사뭇 다르다. 인자하면서도 뭔가 고뇌에 찬듯, 그리고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다. 한 없는 자비심을 베품에 있어서도도 뭔가를 못마땅해 하는 마음이 서려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자비심에도 옥석을 가리고자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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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이발관에서세상사는 이야기 2021. 2. 25. 11:19
이른 마침 동네 이발관. 근 4개월 만이다. 10여년 단골이니 주인 아저씨와는 잘 안다. 이런 저런 말 끝에 내 주변 분들의 이발하는 주기를 언급하면서, 대부분 될 수 있으면 이발관을 가지 않으려고 한다고 했다. 아저씨는 그래요? 하는데 표정이 좀 심드렁해지는 것 같다. 나이도 들고, 또 코로나로 인해 이발관 가기를 꺼리면서 머리가 길더라도 대충 집에서 면도기 트리머로 깎고 손질한다고들 하더라고 했고, 나도 그러는 바람에 오랜 만에 왔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저씨 하는 말이 "우리 같은 이발사 다 굶어죽겠네" 한다. 힐끗 거울에 비친 아저씨 표정이 좀 진지해 보인다. 내가 "그럴 수도 있겄소이다. 아저씨만 그런 것도 아이고 다들 난립니다"며 토를 달았다. 둘 간의 짤막한 대화는 그랬다. 면도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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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속버스터미널, 그리고 그 옥상의 맛집, '포석정'세상사는 이야기 2021. 2. 9. 13:09
서울 반포의 고속버스터미널은 서울역과 함께 누구나에게 애환이 서려있는 곳이다. 떠나고 보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고향을 지방에 둔 출향민의 처지에서는 더 그렇다. 타향살이의 울적한 심사들이 모아져 고향으로 보내지는 곳이다. 1970년 공부하러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땐, 서울역 한 곳이 올라오고 내려가는 플랫폼이었다. 그 때 경부선 밤차로 '은하호'가 있었다. 서울시내에서 한 잔을 걸치고 이슥해지는 밤, 취기가 오르면 뭔가 말로는 표현 못할 향수가 등을 서울역으로 떠민다. 밤 10시 '은하호'를 무작정 탄다. 다음 날 새벽이면 삼랑진을 경유해 넓직한 바다가 보이는 고향 마산에 도착한다. 1970년에 고속버스가 운행되면서는 서울역에서 고속버스터미널로 갈아탔다. 기호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로서는 버스가 어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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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世態(II)세상사는 이야기 2021. 1. 31. 11:51
코로나 시대, 매주 북한산을 오르는, 중. 고등 동창들의 모임인 우리 '북한산포럼'도 코로나 시대의 흐름을 탄다. 하산 후 뒤풀이를 위해 구기동 '삼각산'으로 갔더니 이런 주문을 한다. 일행 9명이 3명 씩 각각 따로 떨어져 앉으라는 것. 시키는대로 각자들 좋아하는 酒種에 따라서들 앉았다. 나는 소주파라 소주 좋아하는 친구 2명이 앉았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좀 거시기했지만, 술 한잔이 들어가니 이내 적응이 됐다. 그리고 마지막에 함께 모여 단체사진 한 장. 동떨어져 앉아 얘기를 주고받으려니 목소리가 커지는 게 좀 부담이 됐다. 하지만 다른 손님들도 마찬가지 처지들인 만큼 조금 지나니 오히려 술집 분위기가 더 얼큰해지는 것 같았다. 뒤풀이를 끝내고 나오면서 이런 포맷으로 앉아서들 술을 마시며 얘기를 나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