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
善行에 대하여세상사는 이야기 2020. 9. 11. 13:36
성경에 이르기를 “오른 손이 한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착한 일을 행하면서도 그 속내에 도사린 가벼움과 공명심, 이기심을 지적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말하자면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하면서,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베풀었지만, 그 초심을 잘 지켜내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경구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선행을 베품을 받은 자 등, 누군가가 알아주리라는 자기 과시와 그에 대한 보상을 바라는 보상기대 심리를 경계하라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불교에도 이와 맥을 같이 하는 경구가 있습니다. '無住相布施' '머무름이 없는 베품'이라는 말이지요. 즉, 물질이나 마음에 머무름없이 보시를 행하라는 것입니다. 예수와 붓다는 행함이 없는 행, 오른 손이 한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는 착한 일을 통해 사..
-
'코로나 블루'(?)세상사는 이야기 2020. 9. 2. 10:16
어제 오후 年晩하신 선배님으로부터의 갑작스런 전화. 진즉 먼저 전화를 드렸어야할 처지에 전화를 받고보니 송구스럽다. 그냥 집에 계신다고 했다. 건강을 여쭤봤더니, 그냥 그렇고 좀 피곤하다 하신다. "코로나 끝나고 우리 소주나 한잔 하자." 좀 뜸을 들이다 하시는 말씀이 이렇다. 그 말씀에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요 했더니, 웃으신다. 덧붙이시는 말씀이 이렇다. "그래도 그렇게라도 해놓자." 전화를 끊고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겨우 그 말씀 하려고 새까만 후배에게 일부러 전화를 하신 건가. 내가 뭔가를 알아차리지 못한 건 아닐까. 그놈에 코로나가 이래저래 사람을 덜썩거리게도 혹은 주저 앉히기도 한다.
-
페이스북 신종 '賣春'유인 수법세상사는 이야기 2020. 8. 29. 12:54
페이스북 댓글에 웬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의 낯 뜨겁고 야한 프로포즈가 잇따르고 있다. 매 포스팅마다 달린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에게도 바이러스처럼 번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이는 신형 매춘 수법이다. 젊고 예쁜 여자가 사진과 함께 선정적인 어구로 유혹하는 댓글인데, 물론 사진의 그 여자일리가 없다. 조직적인 매춘조직에 의한 미끼성의 광고인 것이다. 여기에 뭘 모르고 달겨 들었다가는 십중팔구 큰 코 다친다. 이런 댓글 성의 매춘 수법이 이즈음 페이스북에 왕성하게 퍼지고 있는 것은, 여기에 걸려드는 사람이 많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한 때 '로맨스 스캠(romance scam)'이라는 게 페이스북에서 기승을 부린 적이 있었다. 미모의 거짓 서양여자를 앞세워 사랑을 구하는 척 하며, ..
-
'당근 마켓,' 재미있다세상사는 이야기 2020. 8. 26. 07:45
'당근 마켓'에 잡동사니 내다 파는 데 재미를 붙였다. 모바일 앱을 기반으로 하는 '당근 마켓'은 동네 사람들끼리 물건을 사고파는 말하자면 지역 벼룩시장이다. 여기에서의 거래는 제공되는 채팅 앱을 통해 메시지를 주고 받으면서 하는데 시스템이 간결하고 잘 돼 있을 뿐더러, 여타 인터넷 상거래 사이트와는 달리 수수료 등이 일체 없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전화를 통해 거래하기도 한다. 어제는 옛날 카메라다. 독일 포익트랜더(Voigtlander)의 60년 된 베사마틱(Bessamatic)인데, 고장 난 것이다. 셔터 작동이 잘 안 된다. 이 점을 밝히며 싸게 내놨더니 금새 나갔다. 베리(Berry)라는, 클래식 카메라 수집을 하는 영국 양반이 연락을 해 왔는데, 그는 옛날 카메라 수집을 한다고 했다. 집은..
-
환불 요청세상사는 이야기 2020. 8. 15. 07:35
어제 또 한건의 환불(refund) 요구 메시지. 미국 캘리포니아 어빈(Irvin)에 살고있는 Nick이라는 바이어다. 이베이(eBay) 규정상 꼼짝없이 해 줘야 한다. 그에게 한달도 훨씬 전에 부쳤는데, 아직 못 받았다는 것. 트래킹 조회도 안 된다. 그럼 물건 부쳐 준 나는 어떻게 되나. 캐나다에 EMS로 부친 게 두 달이나 걸려 도착하는 실정이니 구매자들의 심정도 이해는 된다. 뉴질랜드와 덴마크 등의 바이어들도 마찬가지다. 서구 쪽은 대부분 항공편이 끊겼으니, 부쳐줄 수가 없다. 돈은 이미 받았다. 특단의 배송 방법을 강구하고 있으나, 이 또한 망설여진다. 또 물건을 보내놓고도 환불해줄 수 있는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한 많은 폐해 중에 국제배송이 거의 절단나다시피한 것도 그 중의..
-
雨 傘 三 題세상사는 이야기 2020. 8. 14. 18:49
I. 見物生心 비 오는 저녁 지하철. 이어폰 음악 듣는다고 미적대다 전철 안으로 떠밀리듯이 들어왔다. 퇴근시간이라 자리가 있을리 없다. 자리가 없을 때 문옆에 서는 게 편안하다. 기댈 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열차가 신형이라 그런지 등받이가 낮다. 등을 기대면 앉은 사람의 머리 쪽으로 기우니 신경이 많이 쓰인다. 기대선 곳에 우산이 놓여있다. 큰 우산이다. 자리에는 젊은 여자가 앉아있는데, 아마도 그 여자 것으로 보인다. 그 여자 앞에 신사복 차림의, 남자가 서 있다. 교대역. 많은 사람이 타고 내린다. 그 여자가 벌떡 일어서더니 내린다. 우산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앞에 서있던 남자가 잽싸게 자리를 차지한다. 그리고는 나를 힐끔힐끔 쳐다본다. 아무래도 내가 나이께나 든 것 처럼 보여서인가. 그 남자..
-
새벽 장마비, 장미꽃, 마리아세상사는 이야기 2020. 8. 3. 11:12
새벽 산책길을 나섰다가 흠뻑 비를 맞았다. 비가 좀 잠잠해진 것 같아 나선 길인데, 얼마 못 가 물 속에 뛰어든 생쥐 꼴이 됐다. 우산으로도 도저히 비를 피할 수가 없어 피해 들어간 곳은 화원이다. 장미꽃 화원이다. 꽃들은 올케 피지도 않고 비 속에 웅크린 모습들이다. 꽃들을 보고, 비내리는 대장천을 보고, 또 꽃들을 보고 대장천을 보고. 그러기를 20여 분. 안 되겠다 싶어 그냥 비를 맞고 집으로 왔다. 묵주기도를 바치며 걷는 새벽 산책길에 비를 만났고, 또 장미꽃을 만났다. '장미 속의 마리아(La Madonne aux roses)' 그림이 떠 올랐다.
-
비가 오다 또 개이고(乍晴乍雨)세상사는 이야기 2020. 7. 31. 09:14
한 며칠 간 장마비가 쏟아지더니만, 오늘은 쾌청한 날씨다. 장마철이 원래 그렇지만, 어제 어두컴컴한 방 창가에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뭔지 모를 시름에 젖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 밝은 햇살 속 뭔가 모를 희망으로 하루를 시작하고자 하고 있으려니, 날씨도 그렇고 사람의 마음도 그렇고 종잡을 수가 없다. 달리 갖다 붙일 생각의 여지조차가 없는 아침, 그저 무탈한 하루를 바랄 뿐이다. 매월당 김시습은 일기의 이런 변화를 세상과 인간에 빗대 "구름 가고 구름 옴을 산은 다투지 않도다(雲去雲來山不爭)"며, 그러니 어디서든 즐거운 마음을 가지라고 권하고 있는데, 매월당 김 선생의 그 글귀가 담겨있는 '사청사우(乍晴乍雨)'라는 시가 문득 떠올려지는 아침이다. 乍晴乍雨雨還晴(사청사우우환청) 잠깐 갰다 잠깐 비 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