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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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마스크 世態세상사는 이야기 2021. 1. 29. 08:17
코로나 마스크로 사람 잘못 알아보는 경우가 잦다. 어제도 그랬다. 여의도 순천식당에서 선배. 친구들과 소줏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일행 몇 명이 들어오더니 우리 곁자리에 앉는다. 그들은 앉아서도 마스크를 계속 끼고 있다. 한 사람이 좀 눈에 익은데, 긴가민가하다. 마스크 위 눈 부위는 익은데, 옷 차림새 등 여타 부분은 아닌 것으로 일단 여겨졌다. 그 사람도 나를 몇 차례 자꾸 보는 것 같았다. 그러려니 하고 술을 마시는데, 전화가 온다. 전화를 받으려는데, 그 사람이 벌떡 일어나 나에게 온다. 그러고는 "맞지요. 부장님!" 하고는 나를 감싸 안는다. 송 아무개라고, 옛 신문사 후배로 내 정치부장 후임자였다. 이 친구도 그런다. 아무리 봐도 부장님 같은데, 긴가민가했다는 것이다. 하도 오랫만이라 근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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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세상사는 이야기 2020. 11. 22. 11:52
집에 쌀이 떨어져 쌀 팔러 가야지 했는데, 쌀이 들어왔다. 궁하면 통하는 모양이다. 쌀은 집 문 앞에 놓여있었다. 택배로 부쳐진 것이다. 누가 보내준 것이다. 누굴까. 누가 내 집에 쌀 떨어진 줄 알고 보내준 것일까. 오래 걸리지 않았다. 휴대폰에 택배회사로부터 온 배송정보에 떠 있다. 고등학교 동기다. 화성에서 큰 사업을 하는 친구인데, 공장 자투리 땅에 쌀 농사를 짓는다는 얘기를 언젠가 그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그러고 보니 맞다. 작년인가에는 첫 수확 쌀을 보내주지 않았던가. 그걸 퍼뜩 알아챘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아무튼 쌀 떨어져 궁기가 흐르는 집에 쌀이 들어오니 집 안에 온기가 가득하다. 친구가 보내 준 것이니 배부르게 맛있게 잘 먹으면 될 것이다. 경기미라니 찰기와 맛도 있을 것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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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무서울 때세상사는 이야기 2020. 11. 17. 20:37
어두컴컴한 새벽 길, 모르는 사람을 마주친다. 그러면 무섭다. 夜叉만큼이나 무섭다. 뒤에서 저벅저벅 따라오는 사람도 그렇다. 죄 지은 것도 없는데 무섭다. 오늘 같이 유난히 휘뿌연한 날은 더 그렇다. 조금 멀리서 스멀스멀하던 모습이 점차 내 앞으로 다가온다. 후드에 마스크를 했는데, 남잔지 여잔지 분간이 안 된다. 좀 더 가까이 다가오면서 보니 입고있는 파카가 분홍색이다. 그러면 여자다. 여자라서 나는 좀 안도를 한다. 그래도 남자니까. 이윽고 내 곁을 스쳐 지나간다. 그 걸음이 서두는듯 바쁘다. 그 여자는 어둠 속에서 다가오는 나를 보고 오히려 더 긴장했을 것이다. 그 여자가 지나가는데, 그 몸 어디에서 노래 소리를 풍긴다. 어디서 들어봤던 노래다.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어쩌구 저쩌구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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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on 10. 15세상사는 이야기 2020. 10. 15. 17:48
스마트폰 사진의 특징이 하나 있다. 사진을 찍어놓고는 그걸 잊어먹는 때가 왕왕있다는 것이다. 이 사진도 그렇다. 매일 나가는 새벽 산책 길에 찍은 것인데, 오늘 새벽에 찍은 이 사진을 저녁이 다 돼 가는 조금 전에서야 발견한 것이다. 한참 시간이 지난 사진을 보며 호기심을 갖는다. 내가 이 순간 왜 이걸 찍었지 하는 것인데, 그게 때때로 짜릿한 호기심일 수도 있다. 이 사진을 찍을 때의 생각은 이런 것이었다. 절기와 대기의 변화는 참 순식간이로구나 하는 것이고, 그걸 또 새삼 부지불식 간에 깨닫고 있구나 하는 것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새벽 6시면 대기가 어슴푸레 하지만 그래도 밝았다. 5시 반 정도에 집을 나서면 미명이지만, 얼마 간 걸으면 바로 밝아졌다. 그런 날씨가 며칠 사이로 완전히 바뀌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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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선택,' 하루 38명 - OECD 최고세상사는 이야기 2020. 9. 24. 10:03
예전 세계보건기구(WHO)의 재미난(?) 통계가 있습니다. 자살방법과 동기에 관한 폭 넓은 연구의 결과로 발표한 것이었는데, 이에 따르면 자살에 이르게 되는 동기는 989가지, 그리고 자살방법은 83가지에 달한다는 것입니다. 자살의 동기가 천 가지 정도 된다는 WHO 통계는 그만큼 자살의 동기가 되는 인간의 근심과 걱정이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통계가 예전 것이니 그 숫자는 지금쯤 더 늘었을 것입니다. 불교의 백팔번뇌, 즉 중생의 번뇌가 108가지라는 의미의 이 말은 백팔이 많은 것을 나타낸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하니, WHO 통계와 얼추 맞아 떨어진다는 생각입니다. 이 많은 번뇌 모두가 자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겠으나, 결국은 인간을 절망에 빠뜨려 그 어떤 해결점에 도달하는 과정 중의 하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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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함(misery)'세상사는 이야기 2020. 9. 22. 10:03
코로나로 인한 주변의 자가격리자 얘기를 심심찮게 듣는다. 내 주변에는 그런 경우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 우리 동네에만도 여럿이다. 이들 자가격리자들에 대해 이웃들의 수근거림들이 허다하다. 흡사 죄를 짓고 독방에 갇힌 사람 같다. 하는 짓이 타락한 사람 같다. 인간사회에서 내동댕이 쳐진 사람 같다 등등. 어떤 신학자인가 철학자인가 하는 분이 예전에 이런 말을 했다. 폴 틸리히(Paul Tillich)였던가. "외로움이란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는 말이고, 고독이란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러면 코로나로 인해 갇혀진 이른바 자가격리는 사람으로서 어떤 상태의 것일까. '참담함'이 아닐까. 살아도 살아있지 않은, 인간 존재의 회의감을 안기게 하는 그 참담함(misery).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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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 母세상사는 이야기 2020. 9. 20. 19:47
“요번 추석엔 내 올라 가마. 생선 사지 마라. 내 마산서 사갖고 챙기 갈끼다.” 대구 동생 집에 계시는 九旬 노모로 부터의 전화. 치매를 앓고 계시는 어머니는 제사나 명절 때면 항상 이 말씀을 하신다. 습관처럼 됐다. 나는 잘 올라 오시라고 말씀 드린다. 물론 어머니는 말씀 뿐이다. 올라오시질 못 한다. 어머니 못 올라 오시고 제사를 함께 못 모신지 벌써 4년이 넘었다. 예전 명절이나 제사 때 쓰는 생선은 언제나 어머니의 몫이었다. 마산 남성동 선창가 수십년 단골 어물전에서 바리바리 챙겨갖고 어머니는 올라오시곤 했다. 이제는 어머니가 못 오시니 마산 생선 본지도 오래다. 지금도 여기 어물전을 가기는 가지만 살 엄두가 나질 않는다. 어머니 생선 생각에. 못 올라오시는 어머니는 지금도 때마다 생선을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