村 學 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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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주기도村 學 究 2020. 3. 18. 11:38
오랜만에 해보는 묵주기도다. 2006년 견진 받을 때, 그리고 2011년 어떤 난감한 일에 부닥쳐 해보고는 지금껏 그냥 잊고 살았다. 그러니까 나에게 묵주기도는 신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아주 잘못된 것이었다. 말하자면 필요할 때만 찾는, 이기로 점철된 행위라는 게 스스로 느껴지는 부담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묵주기도는 그러한 나름의 심한 자책감이 담겨진 좀 두려운 대상이기도 했다. 그러니 묵주를 다시 들고 기도를 해보려는 게 쉽지는 않다. 그래도 다시 묵주를 들어본다. 아니 다시 들게하는 어떤 힘을 느낀다. 오래 전부터 갖고있던 묵주가 있었다. 오래 전에 고인이 되신 처 할머니가 1979년 12월 나의 영세를 축하한다며 주신 것이다. 뜨개질 주머니에 담겨진, 고색창연하고 묵직한 묵주였다. 묵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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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갑한 날들村 學 究 2020. 3. 8. 09:39
안 하던 짓을 해 보았다. 청와대에서 문 씨 내외의 파안대소로 유명세를 탄 '짜파구리'라는 걸 만들어 본 것이다. '너구리'가 없어 '진짬뽕'을 대신했다. 그러니 굳이 작명을 한다면 '짜파짬뽕'이라 하겠다. 그걸 만들어 본 건 그게 갑자기 먹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기 때문이다. 호수공원 길을 걷다가 갑자기 허기가 났고, 그 틈새에 짜장면이 끼어 들었다. 짜장면, 짜장면 생각하다가 문득 '짜파구리'가 떠 올려진 것인데, 만들어 먹은 소감은 한 마디로 말해 무슨 특출한 맛이 있는 건 아니고 그저 그랬다. 너구리 대신 진짬뽕으로 했기에 그런 것일까. 이런 걸 만들어 그 위에다 채끝살까지 얹어 먹으며 중인환시리에 파안대소하던 그 사람들의 심리는 도대체 무엇일까. 갑갑한 날들이다. 십여 일이 넘어간다. 나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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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智異山村 學 究 2020. 3. 3. 08:16
몸이 나아지면 지리산으로 갈 것이다. 원지에 내려 단성 땅 운리로 간다. 해질 녘이면 좋겠다. 단속사 절 터 오누이 3층 석탑을 볼 것이다. 나의 지리산에 대한 초례(初禮}는 그 석탑이다. 지리산을 품에 안아 보낸 천년이다. 지리산 천년의 내음은 그리움이다. 품어도 품어도 갈증처럼 더해가는 그리움이다. 내가 그린 지리산도 그 안에 있다. 웅석봉으로 오를 것이다. 봄을 기다리는 히어리꽃 나뭇 잎이 한층 짙어져 있을까. 히어리는 추억이다. 지리산 이른 봄의 추억이다. 산 꼭대기 그 아저씨는 아직도 있을까. 산 지키고 불 지키는 그 아저씨는 곰을 닮았다. 그 말에 곰처럼 웃었다. 검수레한 얼골에 허연 이빨까지. 내려오는 길, 옥수 흐르는 계곡에 철퍼덕 엎드린다. 물을 먹는다. 곰 처럼. 추성동엘 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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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with '술'村 學 究 2020. 2. 27. 11:06
막걸리 한 병이 이내 비워졌다. 속에서 좀 더 달라한다. 사러가기도 귀찮고 해서 얼음 위스키나 한 잔 하려는데 어라, 항상 그 자리에 있어야 했던 위스키 병이 보이질 않는다. 이상하다, 이상하다 혼자 주절대는 와중에 부엌 쓰레기 통에 비워진 위스키 병이 보인다. 누군가 병을 쓰레기 통에 버린 것이다. 내가 그랬을리 없다. 꽤 긴 기간동안 술병만 확인했었지 마시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러면 아내가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밤늦게 술 먹고 들어오다 크게 한 소리를 들었는데, 위스키는 말하자면 그 여파의 희생양으로 아내에 의해 버려졌을 것이라는 나름의 확신이 든 것이다. 집에 온 아내에게 그걸 따져 물었다. 하지만 아내는 아니라며 펄쩍 뛴다. 몇 번을 되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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心亂하다村 學 究 2020. 2. 23. 16:33
코로나바이러스도 그렇고 이런 저런 일로 심사가 뒤숭숭하니 술 마시는 빈도가 잦다. 이번 주 들어 세 번이다. 아내에게 한 소리 듣고도 어제 또 마셨다. 술 마시는 동안은 근심 걱정이 사라지지만, 그건 일종의 땜박이일 뿐이다. 마시고 난 다음 날은 심란함의 강도가 오히려 세진다. 그래서인지 오늘 오후는 상당히 울적하다. 어제는 후배들이 불러 백석동에서 마셨다. 얼마 전 병원신세를 진 한 후배는 안부가 걱정됐는데, 만나보니 완전 회복은 아닌 것 같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고 우리들은 그걸 빌미로 한 잔을 더 마셨다. 두 후배는 씩씩하고 명랑하다. 그리고 둘이 서로 잘 논다. 한 후배는 어제 처음 봤다. 경주 사람이라 반가웠다. 내 아버지 고향이 경주 인근의 아화라 그 쪽 얘기를 많이 주고 받았다. 반술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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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과 죽음村 學 究 2020. 2. 10. 08:04
죽음이 잠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가져왔다. 이즈음 들어 그게 좀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 것은, 특별히 아픈 데도 없는데도 아침, 잠에서 깨었을 때 어떤 괴롭고 아픈 증상이 지속적으로 생겨나면서 나름 그런 쪽으로 곰곰이 생각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죽음이라는 게 무엇인가를 놓고 생각해보면, 기본적인 관점에서 생물학적 인간으로서의 육체적 활동이 정지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다. 몸이 쇠약해져 더 이상 몸의 기능이 움직여지지 않을 때를 우선 꼽을 수 있겠다. 이와 더불어 병이 깊어질 때도 마찬가지다. 병이 생체학적으로 몸이 기능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경우다. 사고로 인해 죽음에 이른 것도 궁극적으로는 물리적인 충격이나 훼손에 의해 신체의 기능이 정지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