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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을 공부하리라 마음 먹은 적이 두 차례 있었다. 국민학교 다닐 적에 암기력이 좀 있었던지, 외우는 걸 잘 하는 걸 보고 2학년 때 담임 배효문 선생이 칭찬삼아 앞으로 역사를 공부해봐라 하셨을 때 좀 우쭐해진 기분으로 그런 마음을 가졌었다. 하지만 그걸 그리 오래 간직하지는 못..
삼성동 점심약속 시간에 좀 늦었다. 선배 두 분과 친구 한명. 모종의 일을 도모키 위한 약속이다. 내가 도착하기 전 친구가 운을 뗀 모양이다. 선배 표정이 재미있다. 생각이 왔다갔다하는 표정이랄까. 물었다. 형, 어쩌시겠습니까. 선배는 그냥 쳐다만 본다. 그러더니 불쑥 쇼핑백 하나를 건네준다. 야,..
늦은 저녁. 사진기들이 모여있는 찬장을 보다가 이런 생각이 든다. 저 사진기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지금까지 내가 잘 갖고 있었지만, 계속 내가 갖고 있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 언젠가는 나의 손을 떠날 처지들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팔아 버리는 방법이 있다. 예전에 그렇게 많이 ..
봄날, 지리산의 고장인 산청 땅은 매화 향으로 가득하다. 어딜가나 매화가 지천으로 피었다. 매화의 고장인 산청에서도 특히 자부심으로 가득한 매화가 있다. 이른바 '산청 삼매(山淸 三梅)'다. 옛 가람인 단속사(斷俗寺)터의 '정당매(政黨梅), 남명(南冥) 조 식(曺植) 선생이 수식한 '남명매(南冥梅), 그..
오래된 사진기, 좀 고상하게 표현해서 클래식 카메라의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천차만별이란 의미는 카메라 아이템, 시기나 상태, 그리고 거래 당시의 분위기 등에 좌우된다. 라이카(Leica)나 짜이스 이콘(Zeiss Ikon) 등 이른바 카메라의 名家에서 만든 명품은 물론 비싸고, 위에서 언급한 천차만별의 영향..
2006년인가, 스카이라이프 TV를 신청해 보기 시작한 계기가 있다. 바로 제이미 올리버(Jamie Oliver)란 친구 때문이다. 어느 곳에서 TV를 보는데, 무슨 케이블 방송에 그가 나와 요리를 하는 것이다. 그 것보고 쏙 빠졌다. 재미도 있거니와 어쩌면 따라 해보면 나도 요리 한 두어개 쯤 해볼 수 있는 게 아닌가 ..
詩는 좀 흐릿한 상태에서 보고 읽고 느끼는 게 나에게는 맞는 것 같다. 명징(明澄)한 정신보다는 허술해진 마음의 틈을 여집고 들어오는 詩, 그 게 나는 좋다. 간밤에 마신 술이 덜 깬 상태. 영등포구청역에서 차를 기다리면서 문득 눈에 들어오는 詩 한편. 슬라이딩 도어에 詩와 내가 함께 비쳐진다. '..
어제, 저녁 먹으러 갔다가 대단한 글을 만났다. 日通淸話公 (일통청화공). 처음엔 日淸公通話로 읽었다. 무슨 뜻인가고 가까이서 봤더니 쓴 사람이 그 누구인가. 바로 安 重根 의사다. '庚戌 3월'과 '旅順獄中', 그리고 安의사의 손바닥인 手掌印이 찍혀져 있다. 경술 3월 이면 1910년, 그러니까 安의사가 ..